박상병 정치평론가 

 

헌법 103조를 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너무도 당연한 이 헌법적 규정, 적어도 민주화 이후에는 크게 의심하지 않았던 이 가치들이 요즘 들어선 너무도 냉소적으로 들린다. ‘과연 그런가’라고 누군가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행태를 보면 부끄럽다 못해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함성이 광화문광장을 뒤덮었을 때도 사법부만큼은 제자리(正位)를 지키고 있었을 것으로 봤다. 비록 법관의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쏠려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정치권력과는 크게 무관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명예와 독립성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정치권력의 문제이지 그것이 사법부와 깊숙이 연루돼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비평하면서 정치권력의 이면에 빌붙은 사법부의 저급한 행태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필자의 시야가 협소했으며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존중과 맹신이 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 행태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활성화 돼야

헌법 106조 1항에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서는 정직 등의 처분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외부적 압박과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 시킬 수 있도록 법관의 신분에 대한 안전장치로서 ‘정치적 독립성’과 ‘양심에 의한 심판’을 헌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관 스스로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스스로 내팽개치고 그들의 편익이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정치권력과 ‘내통’하거나 ‘재판거래’를 했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사실상 ‘범죄 행위’에 다른 아니다. 이런 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수사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우리 사법 역사의 치욕이요, 법관의 명예와 양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장과 일부 고위 법관들이 어찌 이럴 수가 있으며, 어쩌다가 우리 사법부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위해 소송서류를 아예 대필해준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집행정지 사건에 제출된 정부 측의 재항고이유서를 법원행정처가 사전에 감수 또는 대필해 줬다는 의혹이다. 청와대 권력에 유리하도록 대법원이 소송서류도 대신 써주고 재판에도 개입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사법부의 위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며 청와대 권력의 하수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헌법을 위반한 것이며 나아가 민주주의의 본령인 ‘삼권분립’을 스스로 허문 것이다. 이런 사법부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죄질의 엄중함은 말로 형언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 소송 결론을 뒤집어 달라’는 박근혜 청와대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민사소송의 절차까지 임의로 바꿨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외교부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대법원 재판에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서’를 받을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것이며 더욱이 법률적 근거도 약하기 때문에 대법원 규칙이 아니라 국회 논의가 필요한 ‘법률 개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법무부와 법원 안팎의 다수 의견이었다. 그러나 양승태의 대법원은 규칙 개정을 강행했다. 그 결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를 입은 국민은 두 번 울었고 청와대 권력은 일본의 비위를 맞출 수 있었다. 일본의 눈치를 본 청와대, 그 청와대 눈치를 보며 위법인 줄 알면서도 밀어붙인 대법원,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누구를 위한 집단이란 말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법원의 태도는 지금도 안이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건을 맡은 검찰이 고영한 전 대법관 등 관련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줄줄이 기각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진실규명에 나선 검찰 수사에 쐐기를 박으며 그들 선배들을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법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검찰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개연성이 없어 영장을 기각한다니, 도대체 이런 궤변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결국 그들도 한통속에 다름 아니다.

헌법 65조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탄핵의 소추를 할 수 있으며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일부 법관들의 오만과 일탈 그리고 위법행위 등은 결국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치권 안팎에서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마침 헌법재판소도 전향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국회의 사법부 견제 및 감시 기능 즉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기능을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법관의 판결은 그대로 민생과 직결된다. 거기에 정치권력이 개입하고 어떤 거래까지 이뤄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모른 체 할 것인가.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와 탄핵심판 그리고 파면, 이런 과정과 결과를 통해 법관들도 좀 더 진정성 있게 ‘양심’을 고민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 나서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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