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전대웅 기자] 30일 오전 전날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내 한 주민이 쓰레받기로 집안의 물을 퍼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8.8.30
[천지일보=전대웅 기자] 30일 오전 전날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내 한 주민이 쓰레받기로 집안의 물을 퍼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8.8.30

주변 하천 범람해 하수구에서 물 역류

피해 복구하기도 전에 또 다시 침수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아침 7시부터 와서 물을 퍼내기 시작했는데 끝이 안 보여! 물이 순식간에 차올라서 신발이며 가방이며 둥둥 떠다니는데 영화의 한 장면인줄 알았다니까….”

30일 서울 은평구 응암3동 2층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는 황금자(60, 여)씨는 이같이 말하며 문 앞에 앉아 연신 물을 퍼냈다. 황씨의 집 내부는 발목까지 차오른 물로 마치 ‘개울’을 연상케 했다. 벽지는 이미 습기가 차올라 축축이 젖어있었고, 이불이나 옷가지 등 살림살이들은 젖은 채 집 밖에 쌓여있었다. 황씨는 “일단 급한 대로 다 빼 놓은 것”이라며 “해가 떠야지 마를 텐데 오후에 비가 또 온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8일에 이어 또 다시 밤사이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응암동 주택가 일대 곳곳에서는 침수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으로 여념이 없었다. 전날 인근 ‘불광천’이 범람하면서 역류한 하수구로 인해 응암동 일대 약 600세대 주택들은 침수피해를 입었다.

[천지일보=전대웅 기자] 전날인 29일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대문 앞에 냉장고 등 가전제품들이 나와있다. ⓒ천지일보 2018.8.30
[천지일보=전대웅 기자] 전날인 29일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대문 앞에 냉장고 등 가전제품들이 나와있다. ⓒ천지일보 2018.8.30

오전 9시. 한바탕 폭우가 휩쓸고 간 응암동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지만 대문 앞에 나와 있는 물에 젖은 냉장고와 장롱 등의 살림살이들이 전날 폭우의 피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물에 젖은 장판, 벽지 등이 담겨진 대형 쓰레기봉투들은 쌓여있었고, 집으로 연결된 물을 빼는 파란 ‘양수기’ 호스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모두 집안에서 나오는 물이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30일 오전 전날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내 한 주택에 설치된 양수기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천지일보 2018.8.30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30일 오전 전날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내 한 주택에 설치된 양수기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천지일보 2018.8.30

골목 곳곳에서는 “아저씨! 여기도 물 퍼주세요!” “한분만 들어와서 같이 옮겨주세요!” 등 도움을 외치는 주민들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렸다. 동사무소 직원과 경찰은 피해를 입은 집에 들어가 주민과 함께 물을 퍼 나르거나 젖은 살림살이 등을 함께 옮겼다.

폭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주민센터에 마련된 임시대피소나 모텔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피해 주민 최미숙(가명, 43, 여)씨는 “주민센터 대피소와 모텔을 왔다갔다 하면서 밤을 샜다”며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옷이 다 젖어버려서 갈아입을 옷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폭우가 쏟아질 당시 집에서 축구경기를 시청하던 임선녀(81, 여)씨는 갑자기 화장실에서 역류한 물에 놀라 양말도 신지 못한 채 집에서 나왔다. 임씨는 “불과 1분도 안 돼 발목까지 물이 찼다”며 “손주의 손을 잡고 얼른 집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물이 종아리까지 차서 걷는데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며 “밖을 나와보니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백민섭 기자] 그제(28일)부터 내린 비로 침수 피해를 본 서울 응암동 인근 주택가는 29일 연이어 내린 비로 인해 큰 침수피해를 입었다. 비가 잦아진 30일 오전 대민지원 나온 은평구청 공무원들이 침수된 반지하 바닥의 빗물을 퍼 담고 있다. ⓒ천지일보 2018.8.30
[천지일보=백민섭 기자] 그제(28일)부터 내린 비로 침수 피해를 본 서울 응암동 인근 주택가는 29일 연이어 내린 비로 인해 큰 침수피해를 입었다. 비가 잦아진 30일 오전 대민지원 나온 은평구청 공무원들이 침수된 반지하 바닥의 빗물을 퍼 담고 있다. ⓒ천지일보 2018.8.30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강연순(67, 여)씨 역시 “싱크대,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했는데 막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집에 물이 찼다”며 “1분만에 전기 코드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올라서 아찔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장판하고 벽지를 다 뜯어내야 하는데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이번주 토요일까지 비가 계속 내린다고 해서 정리도 편히 못하겠고 마음이 그저 불편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양수기를 지원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은 김계숙(가명, 70대, 여)씨는 “비 때문에 집이 발칵 뒤집혔다”며 “당시 집 앞에 나왔는데 물이 출렁출렁 거려서 마치 개울가에 온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물이 산더미 같이 쏟아지는 걸 난생 처음 봤다”며 “방바닥이 반들거리는 바람에 미끄러져서 크게 멍이 들었다”고 했다.

주민센터의 늦은 대응으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응암동 외곽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김정희(가명, 41, 여)씨는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서 주민센터에 신고를 했는데 전화도 잘 안 받고 지원이 밀렸다고만 얘기했다”며 “이후에도 아무 연락도 없었다. 물을 혼자 다 퍼냈는데 그제 서야 직원이 와서 확인하고 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물을 다 빼긴 했지만 반지하다 보니 바람도 안 통하고 바닥도 안 말라서 살 수가 없는 지경”이라며 “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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