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차ㆍ가마

전차 타기 위해 상경하는 사람들도 많아

외국공사 위한 전속 가마꾼도 있어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생경한 것을 보았을 때의 반응은 때로는 무서울 수도, 때로는 경이로울 수도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사진 중에는 처음 접한 문물(기차나 전차)을 보고 놀라 넘어지거나, 해괴망측한 물건이라며 무서워하는 모습이 담긴 것도 있다. 또한 기차를 제외하고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들이 많아, 당시 우리의 진귀한 교통수단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시민의 발 한성 전차(1904)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29
시민의 발 한성 전차(1904)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29

시민의 발 한성 전차(1904)

남대문의 전차. 전차는 1899년 동대문과 흥화문(옛 서울고교 자리) 사이에 개통된 것이 처음이다. 전차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운행, 시민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개통 초기에는 교통수단으로서가 아닌 ‘진기한 구경’의 하나로서 더 주목받았던 전차다. 당시에는 이 전차를 타기 위해 일부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으며, 목적 없이 하루 종일 전차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정류장이 없어 손을 들기만 하면 태워주던 1900년대 초의 모습이다. 전차는 ‘서대문~종로~동대문~홍릉(청량리)’를 운행했으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했다. 전차 지붕의 광고는 주로 은단이나 캐러멜 등으로 장식했다.
 

외국공사 전속 가마꾼(1904)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29
외국공사 전속 가마꾼(1904)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29

외국공사 전속 가마꾼(1904)

체격이 큰 외국인을 태우다 보니 그 무게에 끌채(가마채)가 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는 발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겨울의 추운 날씨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사진 속 인물은 무릎 담요를 덮고 있다.

한편 뚜껑이 없고 의자 같이 생긴 가마를 ‘남여(籃輿)’라고 하는데 의자 모양의 몸체에 기다란 끌채(가마채)가 양 옆에 앞뒤로 길게 뻗은 것이 특징이다.

‘남여’는 본래 왕과 세자가 궁궐 밖이나 궁궐 안 가까운 거리를 갈 때 이용하거나 나이가 든 재상이나 대신도 타고 다녔다. 사진 속 가마가 흡사 ‘남여’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재료나 그 용도에서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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