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쟁기념관을 지나다 ‘광복군 창설 70주년 기념’이란 대형 설치물을 볼 수 있었다. 또 모 언론의 기사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0년 9월 17일 잃었던 나라를 되찾기 위해 광복군이 창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전토나 부모, 처와 자식, 형제를 뒤로하고 오직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광복군 즉, 순국의 선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왠지 대한의 아들로서 그 분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이 한없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예부터 남의 나라를 침략했던 민족이 아니다. 아니 그럴 생각도 아예 없었던 그야말로 평화와 자유의 민족이다. 유사 이래, 나라에 군(軍)이 필요했어도 지키고 찾기 위함이었지 빼앗기 위함은 절대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국군의 정통성인 것이다. 특히 올해는 광복 65주년을 맞아 진정한 광복(光復)의 의미를 유난히 강조한 해이기도 하다. 광화문의 준공과 현판식 역시 서둘러 치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6.25때 남의 나라 미군과 하나 되어 동족을 향해 38선을 최초로 넘었다는 이유와, 한국군과 미군이 상호 간 방위를 위한 협정이 체결된 것에 의미를 두어 대한민국 국군의 날이 10월 1일로 정해져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선 너무나 절실했기에 나름의 많은 의미 또한 없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세의 침탈이 아닌 동족상잔의 수치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용산에 미군부대와 함께하고 있는 ‘전쟁기념관’, 이 어찌 동족상잔의 처절했던 비극을 상기하면서 ‘기념관’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까. ‘전쟁기념관’이 절대 될 수 없으며 ‘전쟁상흔(傷痕)관’이 돼야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생각과 의식과 가치관의 자유와 광복을 얻지 못한 증거다. 수천 년 내려오는 중국문화로부터의 사대사관, 일제치하로부터의 친일사상에 의한 식민사관, ‘한미군사동맹’이란 미국의 개입과 원조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신(新)사대사상을 낳았고, 오늘날 우리는 그 가치관에 몰입되어 헤매고 있다.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동족인 북한군을 쳐서 승리했으니 기념이 된다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상처와 흔적만이 남아 있는 기념이 아닌 비극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우리의 광복군은 이 민족이 외세에 강제 침탈당했을 시 종파를 떠나 33인의 민족 지도자들이 하나 되었고, 오등(吾等)이 하나 되어 외친 3.1운동과 그 정신을 이어받아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식 군대로 창립되었고, 또 세계만방에 공포되었던 광복군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은 바로 이 광복군으로부터 이어져 와야 함이 지극히 마땅하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을 잇게 함으로 자부심을 회복하여 우리는 물론 세계평화의 사도로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복을 맞은 지 6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왜 너도나도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또 하늘높이 띄워가며 다시금 진정한 광복을 외치고 있을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65년 전 그날 우리는 매여 있었고 잡혀 있었다가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의 구속은 벗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생각과 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벗지 못한 구속은 무엇인가. 식민사관과 사대적 사관에 집요하게 세뇌되어 이어져 내려오는 의식과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이 시대의 진정한 광복을 위한 광복군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고, 또 회복과 광복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