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한동안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이 성사될 조짐이다. 새 정부 들어 단 한 차례만 이뤄진 뒤 사실상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지난 10일 북한적십자사의 제의와 우리 측의 긍정적 화답을 계기로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나 볼 수 있는 참으로 비극적 이벤트다. 가장 인도적 차원에서 추진됐어야 할 사업이지만 항상 상봉 성사의 이면에는 남북 간에 정치적 줄다리기와 야합이 게재됐다.

이산가족 상봉은 전두환 군사정권이 정점에 달하던 1985년 9월에 처음 성사됐다. 반민주체제의 극점을 이루던 남북한 당국이 유화적 국면조성을 위한 보조물로 합의가 이뤄져 그해 추석을 즈음해 나흘간 남북한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서울 평양 교환 방문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던 이산상봉이 정례화한 것은 김대중정부 들어서였다. 2000년 6월 성사된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합의됨으로써 2~4개월 단위로 이산가족 상봉단이 남북을 오갔다.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 동안 모두 15차례에 걸쳐 1만6212명의 이산가족이 꿈에 그리던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또한 2005년부터는 이산가족 화상상봉센터가 문을 열게 돼 모두 4차례나 별도의 화상상봉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예외없는 상호주의 등 대북강경노선을 내세운 이명박정부 들어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던 이산상봉은 결국 파국을 맞았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9년 9월 제16차 상봉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과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제2차핵실험 및 올 3월 26일 천안함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누차 지적된 바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결단코 남북한 공히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혈육의 만남’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인도적 문제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이산가족 상봉이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나이 든 실향민과 북한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들은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로 상봉 재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등록한 이산가족 수는 12만 8129명이며 이 가운데 8월 말 현재 전체의 34.7%인 4만 4444명이 사망했다. 연평균 3000여 명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생존자 가운데도 90세 이상 5.6%, 80~89세 35%, 70~79세 36.6% 등 70세 이상이 77.2%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해보면 조기에, 그리고 대규모 상봉이 성사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여가 지나면 상봉대기자들 대부분이 자연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시급한 것이다.

상봉행사가 중단된 1차 책임은 분명 북측에 있지만 우리 측도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다. 북한에 대한 전면적 압박과 봉쇄정책이 전략적으로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적어도 이산가족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예외로 접근했어야 마땅하다. 설사 북한이 이산가족문제를 남측에 대한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악용하려한다 하더라도 이를 에둘러가는 전술적 지혜를 짜내는 데 좀 더 고민했어야 한다.

다행히 북한이 일단 먼저 상봉재개를 제의해왔다. 우리도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그렇다면 일단 상봉재개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물론 정례화의 성사도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복잡한 셈법을 버리고 일단 성사시키는 게 현재로선 시급하다.

그간 남측의 강경자세에 뒤질세라 초강경자세로 역공을 펴오던 북한이 왜 이 시점에서 유화적 제스처를 펴는지를 따져보고 할 겨를이 없다. 모처럼 남북간에 조성되고 있는 실낱같은 온난전선의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게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가장 원초적인 인도적 문제라는 관점에서 챙겨야 한다. 이산의 아픔에, 실향의 서러움에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연로하신 이산가족의 입장에서 문제를 접근하면 답은 나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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