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이 황제를 폐립하려하자 원소가 반대를 했다. 동탁이 칼을 뽑아 들자 원소도 그를 꾸짖으며 칼을 뽑아들었다. 모사 이유가 말리자 서로 칼을 거두었다. 원소는 깊이 탄식한 뒤에 군사들을 거느려 기주로 돌아갔다. 동탁은 후환이 두려워 원소에게 발해 태수 벼슬을 내리고 그를 달랬다.

그 해 9월 삭일이 되자 동탁은 황제를 가덕전에 오르게 한 후에 칼을 빼어 들고 만조 백관을 향해 선포했다. “천자가 어둡고 약하여 족히 임금 노릇을 할 수 없어 이제 책문을 낭독할 테니 백관들은 들어라!”

동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유가 책문을 읽었다.

- 효령 황제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지금의 황제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해내의 백성들은 우러러 바라는 바 컸으나 황제는 자질이 경박하고 위의가 경근치 아니했다. 상중에 게을러서 효도를 다하지 못했고 악한 덕이 드러나니 종묘와 사직을 더럽힐 뿐이다. 황태후 하씨는 모후의 범절이 없어 정사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동태후를 시살해서 삼강의 도가 끊어졌고 하늘과 땅의 기강이 망하고 말았다. 진류왕은 성덕이 있고 범절이 높아서 상중에 슬퍼해 효성을 다하니 아름다운 덕망이 사방에 가득하다. 이제 황제를 폐해 홍농왕을 삼고, 황태후는 정사를 내놓게 하고 진류왕으로 황제 위에 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뜻을 순하게 해서 생령의 희망에 응하게 하는 일이다. -

이유가 책문을 읽고 나자 동탁은 큰소리로 좌우의 시자에게 명을 내렸다. “황제의 옥새 인수를 끄른 뒤에 전상에서 끌어내 북면을 향하여 꿇어앉게 하라.”

그 소리에 시자는 황망히 용상 앞에 올라 어린 황제의 용포에 차고 있는 옥새를 끄른 후에 황제를 용상에서 끌어내려 전 아래 꿇어앉혔다.

동탁은 다시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태후도 끌어내려 예복을 벗기라고 했다. 시자들은 하태후를 끌어내려 예복을 벗겼다. 황제와 태후는 서로 붙들고 통곡을 했다. 모든 신하들은 얼굴빛이 참담할 뿐이었다.

뜰 아래 서 있던 대관 한 사람이 분함을 참지 못해 큰소리로 외쳤다.

“역적 동탁아, 네 감히 하늘을 속여서 역적질을 하느냐? 나는 내 목의 피를 뿌려서 네 역적 놈을 징계하리라!”

말을 마치자 손에 든 상아홀(象牙笏)을 동탁을 향해 던졌다. 모두가 바라보니 상서 정관이었다. 동탁은 크게 노했다. “저놈을 끌어내려 참하라!”

시자들은 정관의 멱살을 잡아 행형장으로 끌고 나갔다. 정관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아니하고 동탁을 꾸짖었다. “이놈, 네가 올바르게 살 줄 아느냐? 하늘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아, 조정에는 이렇게도 사람이 없단 말이냐?”

정관은 끌려가면서도 계속해서 동탁을 꾸짖었다. 마침내 정관은 역적 동탁의 칼 아래 목숨을 잃었다. 당시의 시인은 시를 지어 정관의 충의를 찬양했다.

‘한(漢)나라 종사는 망해 버리는데/ 다만 정공이 있어 장부답구나.’

동탁은 진류왕을 청해 전에 오르게 한 뒤에 만세를 불러 군신의 조하를 받게 하고 홍농왕과 왕비 당씨와 하태후를 영안궁에 가두게 하고 궁문을 자물쇠로 굳게 잠가 버리고 군신의 출입을 금했다.

어린 황제가 등극한 것은 4월이었다. 동탁에 의해 내쫓기니 황제의 자리에 있은 지는 겨우 넉 달이었다.

동탁에 의해 황제가 된 진류왕 협의 자는 백화였다. 영제의 둘째 아들이니 이때 나이 겨우 아홉 살이었다. 이가 곧 헌제(獻帝)였다. 연호를 고쳐 초평(初平)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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