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아들이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해서 해보라고 했다. 두 달을 넘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개학날 학교 기숙사로 돌아갔다. 사실 이곳저곳 찾아보다가 결국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 그나마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여름 그 폭염에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하는 기간 하루는 별안간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네가 무역학과를 다니고 하니 앞으로 전공도 살리고, 또한 글로벌시대에 중국어와 영어는 꼭 잘해야 한다”고 평소에 얘기를 해 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애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귀가 솔깃했다. “새삼스럽게 왜 중국어를 배우려고 그래?” 하고 물었다. 아르바이트 현장에 중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애기를 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파트 건설현장에 조금 과장해 말하면 다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장님만 빼고 다 중국인 남녀들이 팀을 이루면서 현장을 돌아다니고 일한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갈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것을 간접적으로 실감했다. 세계 도처에 중국인들이 안 나가 있는 곳이 없지만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중국동포들부터 시작된 중국인들의 유입은 이젠 막을 방도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집 주변 아파트 현장을 봐도 얼마나 중국 사람들이 많으면 현장의 구호라든지 안전문구가 중국어와 병기(倂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구한말과 남·북 분단 73년 전만 해도 중국이라는 국경개념은 그렇게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기차타고 중국을 갔으니 말이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독일까지 간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닌가.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쪽은 원치 않은 섬이 된 것이다. 이젠 천천히 데탕트(detente) 분위기가 도래하는 것 같다. 실기 하지 않아야 한다. 그 뒤편에 중국이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 중국과는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관계라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통일이 되도 직접 가장 길게 1400㎞ 북·중 국경선을 숙명과 같이 맞대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중국이 서서히 한국을 깔보기 시작하는 느낌을 솔직히 버릴 수 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는 중국에게 휘둘리지 않을 묘수들을 최대로 찾아야 한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 루쉰(魯汛)이 있다. 대표작이 아큐정전(阿Q正傳)이다. 본인이 평생 고민하고 숙고한 중국인들에 대해서 언급한 기억이 난다. ‘중국인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말을 한 것 같다. 

가까이는 사드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본과 미국은 훨씬 뛰어나고 양도 많은 사드를 배치하고 운영한다. 자기들도 러시아제 사드를 들여와 배치해 놓고 유독 한국의 사드배치를 심하고 거칠게 문제 삼았다. 중국에 유학할 당시 친구를 지난 5월 중국에 갈 때 만났다. 벤츠를 끌고 나와 과시했다. 3억은 간다고 한다. 거하게 그 친구가 두 턱을 샀다. 자기가 나한테 학생시절 식사 대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때 내가 자기한테 “영원히 나를 사 줄 기회는 없을 것이다. 밥은 내가 산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물론 기억도 안 난다. 당시 중국학생들을 많이 사준 것은 분명하다. 자기가 성공했고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내가 너한테 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친구임은 틀림없다. 중국인의 한 단면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중국이 보기에 한국은 뛰어넘었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두렵다. 미국에는 함부로 못한다. 일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이다. 산업기술력과 제조업 경쟁력의 우위를 한국이 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솔직히 중국에 뒤졌다. 핀테크 산업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 부품 없이 아직까지는 수출을 제대로 못하는 상품이 많다. 굳건한 한·미 동맹과 산업기술력과 제조업의 경쟁력 지속이 향후 관건이다. 한·미가 틈이 생기고 경쟁력이 저하되면 중국에겐 어려워지는 것이 불가피하니 어쩌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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