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지난 10일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우리에게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 서거 59주기 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 박사는 작물 품종 개량을 통해 해방 후 가난으로 굶주리던 우리 민족에게 희망의 씨앗을 싹틔워 준 시대적 영웅이지만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한 관심도 그리 높지 않다.  

1950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일본에서 환국 후 우장춘 박사는 농촌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농업시험장과 연구소를 방문하며 낙후된 농촌의 모습을 보고 작물의 품종개발 의지를 굳혔다. 그러나 우 박사가 우량품종을 육성해 농민들에게 종자를 보급하려 했을 때, 당시 “농촌지도소가 권장하지 않는 작물을 심으면 된다”는 농민들의 관(官)에 대한 불신으로 보급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래서 우 박사가 농민들에게 자신이 개량한 종자에 대한 믿음을 심으려고 들고 나온 카드가 ‘씨 없는 수박’이었다. 이는 농민들에게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보여준다면 새로운 육종 기술로 만든 종자를 믿고 농사에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시도가 농민들에게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씨 없는 수박이 당시 언론에 크게 부각되며 일반 대중에게 우 박사가 세계 최초로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씨 없는 수박은 1943년에 일본 교토대학 기하라연구소의 기하라 히토시(木原均)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됐다.  

국제학술대회로 개최되고 있는 배추유전체학회에 참석했을 때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발표의 서두에서 ‘우장춘 박사의 삼각형’을 의미하는 ‘U's Triangle’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 추억이 있다. 이렇게 배추 관련 학술대회에서 많은 학자들이 발표에서 언급하고 있는 U's Triangle은 무엇일까.

U's Triangle에서 ‘U’는 우장춘 박사의 성(姓)이다. 우 박사는 일본 이름이 스나가 나가하루(須永 長春)였지만, 논문을 발표할 때는 자신의 영문 이름을 N. U(Nagaharu U)라고 표기했다. ‘Nagaharu’는 長春(장춘)의 일본어 표기이고, ‘U’는 한국 성인 禹(우)의 한국어 표기이다. 일반적으로 우씨들이 성을 ‘Woo’로 쓰는 데 비해 우 박사가 자신의 성을 알파벳 ‘U’ 한 글자로 쓴 것도 특이한 일이다. 

우 박사가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씨 없는 수박’이 아니라 1935년에 배추, 양배추, 겨자 등이 속하는 배추속(Brassica) 식물의 게놈 분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제안한 종(種)의 합성(合成) 이론이다. 당시 우 박사는 배추속 식물 6종을 대상으로 게놈(유전체, Genome)의 연관성 연구를 통해 이 종들을 교잡(交雜)시키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이를 삼각형으로 도식화해 ‘U's Triangle’로 발표하며 세계 육종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존하는 종들 사이의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 박사의 ‘종의 합성론’은 “종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 박사는 이러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왕립협회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육종학자 대열에 당당하게 올라있다. 

배추속 식물인 배추, 양배추, 흑겨자는 게놈과 기본 염색체 수가 서로 달라 배추는 A(x=10), 흑겨자는 B(x=8), 양배추는 C(x=9)로 표기하며, 배추의 염색체는 AA=2x=20, 흑겨자는 BB=2x=16 그리고 양배추 CC=2x=18이다.    

우 박사는 배추(AA)와 양배추(CC)의 교배를 통해 4배체 잡종(AACC=38)을 얻었는데, 이 식물이 바로 이른 봄 노란 꽃을 만개하며 피어나는 유채이다. 같은 원리로 배추(AA)와 흑겨자(BB)를 교배해 육종한 품종이 갓김치를 담가먹는 갓(AABB=36)이며, 흑겨자(BB)와 양배추(CC)를 교배하면 이디오피아겨자(BBCC=34)가 만들어진다. 이들 관계를 삼각형으로 도식화해 만든 도표가 ‘우장춘 박사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U's Triangle’이다.  

2019년은 우장춘 박사의 서거 60주기를 맞이하는 해이다. 이제 ‘씨 없는 수박’으로만 막연하게 알려져 있는 우 박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제고와 함께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이끌어나갈 ‘제2의 우장춘 박사’가 나와 노벨상 수상 소식도 전해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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