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태고의 땅 연천, 역사와 자연의 숨결을 느끼다
[쉼표] 태고의 땅 연천, 역사와 자연의 숨결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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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호로고루 동벽에서 바라본 임진강 모습. 수십만년과 수천년을 이어온 자연과 인류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역사의 땅 연천의 하루가 붉은 석양과 함께 저물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4
연천 호로고루 동벽에서 바라본 임진강 모습. 수십만년과 수천년을 이어온 자연과 인류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역사의 땅 연천의 하루가 붉은 석양과 함께 저물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4 

명소 즐비한 한탄강 지질공원 
자연·생태·문화·고고학 보고
전곡리 유적 등 역사자료 풍성
화산활동의 흔적, 주상절리로

[천지일보=임문식, 이성애 기자]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과 임진강 줄기를 따라 늘어선 주상절리. 그 옛날 격렬했던 화산 활동은 우리에게 천혜의 자연 경관을 남겼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게 펼쳐진 풍광 앞에선 누구나 압도를 당한다. 수천만년에서 수십만년에 이르는 과거 지질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다. 거대한 자연 앞에 숙연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은 그런 곳이다. 2015년 말 국내 일곱번째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 일대는 자연 생태와 문화, 역사, 고고학의 보고다. 특히 경기도 연천 지역은 먼 옛날 지질 활동의 흔적뿐만 아니라 구석기 주먹도끼가 출토된 전곡리 유적까지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학술적 가치를 가진 한탄강 지질공원은 현무암 협곡 지역으로 연천군에서 포천시, 철원군까지 총 24개소의 지질 명소로 이뤄져 있다.

한탄강 협곡은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50~12만년 전 북한 지역에 있는 강원 평강군 부근 ‘680m 고지’와 ‘오리산’에서 수차례의 화산폭발이 일어났고, 분출된 용암은 옛 한탄강 유로를 메우면서 철원, 포천, 연천, 파주까지 흘러갔다.

이렇게 형성된 용암지대가 식으면서 3~8각 기둥 모양으로 굳었고, 이 기둥들 틈과 현무암, 화강암, 편마암 경계에 비와 강물이 흐르면서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현무암 협곡이 생성됐다.

이현숙 해설사는 “내륙에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지형 중 주상절리와 협곡이 강을 따라 형성된 곳은 이 지역이 유일하다”고 귀띔했다.

안타깝게도 화산폭발의 정확한 시기나 횟수 등은 현재로서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대상이 되는 화산이 모두 북쪽에 있어서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한탄강변의 대표 명소인 재인폭포. ⓒ천지일보 2018.8.24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한탄강변의 대표 명소인 재인폭포. ⓒ천지일보 2018.8.24

한여름의 폭염 기세가 살짝 꺾인 지난 17일 기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연천읍 부곡리에 있는 재인폭포였다.

높이 18미터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부터 쏟아지는 폭포수가 절경이다. 영롱한 에머럴드 빛 웅덩이가 폭포수를 받아낸다. 연천 지역의 명소 중 으뜸이라 손꼽을 만하다.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웅장함은 그 크기를 더했다. 재인폭포는 항아리처럼 아랫부분이 움푹 패여 들어간 모양을 하고 있었다. 폭포에 의해 현무암 절벽이 침식되고, 결빙과 해빙을 거듭하는 중에 절벽 파편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모양이 된 것이다.

절벽 아래 고인 물에선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쉬리 등 5~6종류의 어류와 절벽 바위틈엔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도 서식한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밖은 폭염이었으나 여기는 시원했다. 깎아지른 높은 절벽이 감싸고돌면서 그늘이 졌고, 시원한 냉기가 감돌았다. 폭포수가 천연 에어컨을 만들었다. 이 해설사는 “많은 분들이 재인폭포를 찾고 있는데, 이곳이 너무 시원하니까 떠날 생각을 안 하시는 분이 많다”며 웃었다.

그런데 왜 재인폭포일까. 이름의 유래도 재밌다.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재인(才人)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으려는 원님의 계략에 폭포 절벽에서 광대줄을 탔고, 원님이 줄을 끊어 죽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기록에선 재인이 마을 사람과 폭포 외줄 타기를 놓고 내기를 하게 됐고,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건 마을 사람이 재인의 능숙한 외줄 타기에 다급해지자 줄을 끊어 죽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탄강댐 물문화관에 마련된 ‘연천군, 사람을 만나다’ 기획전시 공간. ⓒ천지일보 2018.8.24
한탄강댐 물문화관에 마련된 ‘연천군, 사람을 만나다’ 기획전시 공간. ⓒ천지일보 2018.8.24

두 번째로 찾은 곳은 한탄강댐 물문화관이다. 이곳에선 연천군 지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 53명의 삶의 이야기를 기획 전시해 놓은 ‘연천군, 사람을 만나다’는 기획전을 지난 2017년 11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한탄강 주변에서 살던 주민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자료, 사진, 영상이 해당 주민들의 기증품과 함께 전시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길을 전곡읍 신답리에 있는 아우라지 베개용암으로 돌렸다.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아우라지에 자리 잡은 베개용암은 뜨거운 용암이 물을 만나 급격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용암이 흐르던 환경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곳으로 천연기념물 제542호로 지정됐다.

아우라지 베개용암. ⓒ천지일보 2018.8.24
아우라지 베개용암. ⓒ천지일보 2018.8.24

맞은편에 있는 전망대의 망원경으로 보면 베개용암은 육안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아래엔 고생대에 만들어진 변성암이 있고, 그 위로는 신생대에 생성된 현무암이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동글동글해 그 윗부분의 수직 형태로 된 현무암과 확연히 구분된다. 용암이 물속에서 급격하게 식으면서 생긴 모양이다. 마치 베개를 쌓아놓은 모습이라고 해 베개용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용암이 흐를 당시 물속 환경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해설사는 “용암이 물속에서 급격하게 식는 현상은 주로 해저에서 일어난다”며 “내륙에서 저렇게 베개용암이 형성된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베개용암 부근엔 좌상바위가 경치를 뽐내고 있다. 한탄강 변에서 6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좌상바위는 한탄강에 주로 분포하는 신생대 4기 현무암이 아닌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현무암이다. 인근 마을에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한탄강과 임진강 일원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자연의 역사를 담고 있다면 전곡리 유적지는 인류의 역사를 품고 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천지일보 2018.8.24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천지일보 2018.8.24

사적 제268로 지정된 연천 전곡리 유적은 한탄강을 끼고 도는 전곡리 한탄강변 일대에 조성됐다. 구석기 시대 유적인 이곳은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이다.

유적지 입구를 지나 토층전시관에 들어서자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발굴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이 눈길을 끈다. 주먹도끼와 함께 붓과 호미, 간이 의자까지 바닥에 놓여 발굴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석기의 양면을 떼어내어 양쪽이 대칭적으로 날카로운 면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베거나 찍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 이전 시기 석기보다 효율적인 도구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1940년대 초 하버디 대학의 모비우스 교수가 제시하고 전곡리 유적이 발견되지 전까지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아온 찍개 문화권설을 결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동안 동아시아 지역에 기술적으로 발달한 도끼가 발견되지 않아 서양인이 구석기 시대부터 인종적으로 우월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일거에 뒤엎는 계기가 됐다.

이날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임진강변에 있는 연천 호로고루 동벽이었다. 태양이 산 너머로 내려간 직후 도착한 호로고루에선 석양이 붉게 드리운 ‘매직아워’의 순간이 한창이었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뒤 신라 통일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변형되고 훼손됐다가 현재와 같이 복원됐다.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연천 호로고루 동벽에 모인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가 방종모 촬영) ⓒ천지일보 2018.8.24
연천 호로고루 동벽에 모인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가 방종모 촬영) ⓒ천지일보 2018.8.24

태양이 지고 날이 저물었다. 수십만년과 수천년을 이어온 자연과 인류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역사의 땅 연천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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