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북한 사람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들을 잘 한다. 남북한 회담이나 국제 스포츠경기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중에는 말을 술술 잘 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 기억 속에서도 말 잘하는 북한 사람들이 여러 명 떠오른다.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과 남북 체육회담 등에서 만난 장웅 북한 IOC 위원은 기자회견에서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시나리오를 발표하듯 능수능란하게 브리핑을 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북한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사격의 리호준은 “원수의 심장을 겨누는 마음으로 총을 쐈다”며 금메달 소감을 밝혀 경악케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난 북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말을 잘 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고,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모습이었다. 오래 전 평양에서 비공식 취재로 만났던 일반 평양시민이 그랬고, 판문점에서 만난 북한 기자들도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은 아마도 ‘생활총화’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주 주민을 소집해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하고 상호비판까지 해야 하는 북한 특유의 회의 방식에 익숙해 대본에 맞춰서 하는 말들은 잘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공개적으로 만나는 북한 사람들은 틀에 박힌 말, 즉 이념적·사상적 담론을 토대로 얘기를 하는 것이 대체적인 모습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있는 북한 선수단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제된 말들을 잘 한다. 여자농구 남북단일팀의 한 북한 선수는 “일 더하기 일은 산술적으로는 둘이지만 일 더하기 일이 더 큰 하나가 돼야 하는 게 북과 남의 이상적인 목표”라고 말했으며, 북한 선수단 원길우 단장(체육성 부상)은 “우리 민족이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민족 앞에 큰 성과를 쟁취하길 바란다. 북과 남이 단합된 힘을 과시하자”고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으로 개선된 남북관계의 영향 때문인 듯 북한 선수단의 자세가 많이 자연스러워진 분위기이다. 북한의 첫 금을 안긴 여자역도 48kg의 리성금은 시상식이 끝난 뒤 단일팀 응원단으로 찾아가 사인 요청을 받자 그 자리에서 흔쾌히 사인을 해주었다. 남자역도 56kg에서 금메달을 딴 엄윤철도 4년 전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졌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김정은 원수님은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없지만 달걀에 사상을 넣으면 바위도 깰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애국가(북한 애국가)가 울러 퍼질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세계신기록을 달성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며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는 말을 했다. 레슬링 여자자유형 53kg 금메달리스트 박영미는 평창동계올림픽 컬링에서 ‘영미 선풍’이 불었던 것을 상기시키듯 “한국에서도 영미라는 이름이 유명하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습네까?”라고 반문하며 “금메달을 따서 기분 좋다, 끝까지 열심히 하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시대와 사회의 사상, 이념, 가치관 등이 담겨있다. 한국과 같이 자유민주주의에 사는 사람들은 인식론적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사유를 존중하며 개인적인 말들을 자연스럽게 한다. 하지만 북한처럼 국가주의, 전체주의가 통용되는 사회는 개인주의 대신 집단주의에 필요한 담론들을 앞세워 체제와 이념에 맞는 말들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선수들이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말하기 때문에 북한 선수들에 비해 언뜻 보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의식에 몰입하고 ‘강한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선수들이 집단의 사유를 위해 ‘강한 사회주의’ 시스템 아래서 개인을 희생해야 하는 북한 선수들에 비해 훨씬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며 인간관계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