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꽃

나태주(1945~  )

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날
사람 가운데서도
아는 사람이 더
섬뜩한 날

사람을 피해서
차라리 짐승이라도 만나고 싶어
혼자 찾은 오솔길 풀섶에
반짝, 덧니를 드러내고 웃는
아지 못할
가을 풀꽃 하나.

 

[시평]

입추 지나, 처서(處暑)가 며칠 남지 않았다. 머지않아 가을이다. 풀섶은 이제 함초롬히 아침저녁으로는 이슬에 젖을 것이다. 파란 하늘, 시원한 바람 속 가을꽃들을 한들거릴 것이다. 가을꽃은 봄꽃이나 또 여름에 피는 꽃과는 조금은 다르다. 봄꽃은 짙은 향기와 함께 새로운 생명력을 함축하고 있다면, 여름에 피는 꽃은 왠지 무더위를 견디는 강인함을 지닌 듯하다. 이에 비하여 가을꽃은 맑고 소담하며 연약한 여인이 연상되는, 그런 꽃들이다.

더구나 들에 피는 이름 없는 작은 가을꽃, 더더욱 가련한 여인을 연상하게 한다. 문득 풀섶에서 만나는 가을꽃, 그 꽃은 어쩌면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한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이 무서울 때가 더러 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참으로 복잡한 일들이 얽히고설킬 수 있으므로, 그 복잡함으로 인해 사람이 두려울 때가 없지 않아 있다. 왜 그런가.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편애(偏愛)의 성향이 강해서, 자신을 우선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지를 않다. 자연(自然)은 그 글자 그대로, ‘있는 그대가 바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삶이 피폐해질 때, 그래서 이러한 자연 속에서 오히려 위안을 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을 피해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어느 풀숲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숨은 듯, 피어 있는 작은 가을꽃 하나. 반짝, 덧니를 드러내고 웃는, 아지 못할 가을 풀꽃 하나. 사람들로 인해 다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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