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고창 ②] 살아있는 선사유적 ‘고인돌’
[문화재 탐방-고창 ②] 살아있는 선사유적 ‘고인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창 고인돌 유적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고창, 다양한 형태 고인돌… 세계 최대 분포지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선돌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석문화 중 하나인 고인돌.

고인돌은 우리나라에 3만여 기 이상 분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은 희귀성, 역사성, 특수성 등의 여러 측면에서 ‘아주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오래된 유산’으로 평가 받아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특히 우리나라 고인돌은 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 밀집‧분포돼 있다. 전라북도에 분포된 고인돌은 약 2600여 기 이상이며, 이 중에서도 고창지역은 전북 고인돌의 63% 이상인 1665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단일 구역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밀집‧분포된 것으로 유명하다.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중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게 군집해 있는 고창 고인돌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자.

 

 

▲ 북방식(탁자식) 고인돌-무덤방을 지상에 노출시킴 (제공: 고창 고인돌박물관)


◆ 한눈에 보는 다양한 고인돌

고창에는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그 가치성을 더한다.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로 나뉘며, 개석식‧지상석곽식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고창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고인돌을 한번에 만나 볼 수 있다.

북방식(탁자식) 고인돌은 네 개의 판석을 세워 장방형의 돌방을 구성하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돌을 뚜껑돌로 올려놓은 것으로 시신을 매장하는 무덤방을 지상에 노출시킨 것이 특징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바둑판식’이라고도 불린다. 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뚜껑돌을 올려놓은 것으로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걸쳐 유행한 묘제양식이다.

개석식 고인돌은 한반도에 가장 많이 발견된 고인돌로 땅 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방 뚜껑으로 커다란 돌을 올려놓은 고인돌을 말한다. 대체적으로 지표면에는 굄돌이 드러나지 않아 큰돌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대부분 반쯤 땅속에 파묻혀있어 자연석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지상석곽식 고인돌은 고창에서만 볼 수 있는 고창식 고인돌이다. 북방식 고인돌의 부류로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해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방은 반지하 형태로 나타나고, 판석보다는 두툼한 상석을 가지고 있다. 이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 부류에 속하면서 남방식에서 나타나는 굄돌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뚜껑돌을 올림 (제공: 고창 고인돌박물관)

 

 

▲ 개석식 고인돌(큰돌무덤)-땅속에 무덤방이 있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올림 (제공: 고창 고인돌박물관)
▲ 지상석곽식 고인돌-반지하 형태 무덤방, 북방식이나 굄돌을 가짐 (제공: 고창 고인돌박물관)


◆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게 군집한 고창 고인돌

기원전 4~5세기경 조성된 동양 최대의 고인돌 집단 군락지인 죽림리‧상갑리 고인돌군은 고창읍에서 북서편으로 약 9.5km 남짓한 지점에 자리한 매산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돼 있고 지정 보호구역의 면적은 57만 3250㎡이다.

고인돌의 크기와 형식이 다양하고 단위면적당 밀집도가 가장 높으며, 고인돌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도 겸하고 있다.

동북아지석묘연구소 이영문 소장은 “고창 고인돌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한 지역에 밀집 분포돼 있는 점과 다양한 형태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지석묘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며, 고인돌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고인돌, 무덤기능만 있었나?

고인돌은 덮개돌 형태와 하부구조, 입지와 군집 내에서의 위치로 봤을 때 무덤, 재단, 묘표석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무덤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고인돌이 한 곳에 떼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는 점, 무덤의 가장 직접적인 자료인 사람 뼈가 발견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또 고인돌 무덤방의 규모가 무덤으로서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무덤방의 길이와 폭이 다양하여 펴묻기 굽혀묻기 두벌묻기 화장 등 여러 가지 장법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장은 “고인돌을 축조하던 사회에서 여러 집단들의 협동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어떤 상징적인 기념물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거대한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은 지연으로 결속된 여러 집단들의 공공집회 또는 타 집단과의 경계를 표시하는 건조물로서 제단의 의미를 가진 고인돌이 건립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묘표석은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 또는 묘역조성 집단의 권위와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것과 단순히 묘역임을 표시하는 것 등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묘표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제단고인돌과 같은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군집의 중앙이나 한쪽에 치우쳐 위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보다 작은 규모이거나 소형으로 그 자체는 무덤방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이렇게 고창군 죽림리,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가장 크고 넓게 분포된 고인돌은 당시 사람들에게 단순한 돌무덤에 그치지 않았다.

이 소장은 “주변 환경에 의존하면서 살아간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잔존하고 있는 거목이나 거석에 대한 숭배는 자연 발생적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