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강국 조선②] ‘옷소매에 쏙~’ 조선 교양인 필수품 미니 지도
[지도의 강국 조선②] ‘옷소매에 쏙~’ 조선 교양인 필수품 미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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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지도하면 보통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를 떠올린다. 김정호 외에우리나라 전통 지도에 관한 언급은 적다. 하지만 선조들이 제작한 수많은 지도가 전해지고 있다. 그 안에는 국방, 문화, 선조들의 삶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다양 지도를 살펴봤다.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천지일보 2018.8.22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천지일보 2018.8.22

18세기, 국토 주요 정보 담겨

실용적인 지리 정보 필요성 ↑

휴대용 지도 등장, 대중화 기여
 

한글로 표기한 지도 등장해

두모개 등 사용하던 지명 담겨

풍수리지 담은 지도 인기 높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세상에 나온 우리나라 지도가 수없이 많으나, 모사본이나 인쇄본을 막론하고 모두 지면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그렸기에 산천과 거리가 모두 바르지 못하다. (생략) 만약 그 지도를 보고 사방으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전 지도의 제작법을 병폐로 여겼기에 이 지도를 만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에서 공개된 ‘동국대지도’의 발문에는 이 같은 글이 실렸다. 18세기 중엽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대지도’의 원본은 전하지 않지만 사본은 그의 지도를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국’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별칭 중 대표적인 것이다.

◆교양인 위한 지도 제작

조선의 지도는 세상과 국토의 모습은 물론 역사에 대한 지식도 담고 있었다. 당시 조선 사회를 살던 교양인이라면, 국토의 세세한 실상을 이해하기 위한 지도가 필요했다. 동아시아를 중심에 둔 세계 지도와 중국지도, 조선 전도, 조선 팔도 지도, 일본과 유구 지도까지 13종류의 지도를 차례로 담은 지도책이 크게 유행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18세기에는 국토에 대한 주요 정보가 들어간 지도가 등장했고, 실용적인 지리 정보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휴대할 수 있는 지도책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수진본 지도’가 있다. 지도는 가로 3~4㎝, 세로 10㎝ 내외의 작은 크기로 제작됐다. 이 지도에는 전국 8도의 간략한 지리정보를 수록해 놓았다. 군사시설과 주민과 전답의 통계, 고을의 연혁, 서울로부터 감영까지의 거리 정보 등도 담았다. 이는 조선 후기 지도의 대중화에 기여했던 대표적인 지도다.

백승미 학예연구사는 “휴대하기 편한 지도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대용 지도는 지도책에 담겨 보관되기도 했다. 전시에서 공개된 지도책은 지도를 필사한 사람이 1805년으로 제작 시기를 밝혀뒀다. 지도책 속의 도별 지도는 조선의 행정 구역과 교통망,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또한 고을 간 거리 정보를 비롯해 역대 국왕과 왕비의 기일, 문묘의 신위 배치 등도 정리해 놓아 구체적인 사용 방식을 짐작하게 했다.

휴대할수 있도록 작게 만들어진 지도 ⓒ천지일보 2018.8.22
휴대할수 있도록 작게 만들어진 지도 ⓒ천지일보 2018.8.22

◆필요한 정보 골라 지도에 담아

1463년 정척과 양성지가 만든 ‘동국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목판본 지도는 국토의 윤곽에 대한 상세한 표현은 최대한 억제한 후 기본적인 행정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오른쪽의 여백에는 각 고을에 파견되는 지방관의 품계별로 고을의 수를 정리한 통계를 제시해 놓았다.

김정호가 목판본으로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지도를 베껴 그린 지도인 ‘수선전도’는 제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명이 한글로 적혀 있는 게 특징이다.

또한 지도가 필사된 1890년대의 시대 상황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1892년에 개설된 미국공사관과 러시아 공사관을 표기했고, 1896년에 철거되는 영은문도 표기했다. 살곳다리(전곶교), 두모개(두모포), 노돌나루(노량진) 등의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지명이 생생하게 담겼다.

‘환유첩’은 고종 때의 여러 고을의 사또였던 관리가 근무한 고을의 지도를 모아 만든 지도책이다. 조선 전국의 관방과 해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대형 군사지도인 ‘청구관해방총도’도 제작됐다. 조선을 중심으로 해서 만주지역과 일본까지 담아냈다. 사용자의 기호에 맞는 지도를 끼워 넣는 지도책도 만들어졌다.

풍수지리를 담은 지도도 인기가 높았다. 땅의 형세와 기운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지리설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대표적으로 ‘택리지’가 있다. 기존의 지리서가 지역 중심의 지리지이거나 역사지리 위주의 책이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저자가 팔도의 여러 지역을 답사하며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 학예연구사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경우에도 고을에 부임하면 제일 먼저 할 일로 지도 만드는 일을 꼽았다. 통치나 행정 수단으로서 지도가 필요했다”라며 “특히 그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아름다운 지도를 만들었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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