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서울 강남의 한 사립고교에서 근무하는 교무부장의 쌍둥이 자녀가 나란히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한 것을 두고 부정 의혹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1학년 1학기 때 전교 121등, 59등을 했던 아이들이 1년 만에 문과, 이과에서 나란히 전교 1등을 했다니 놀랍다.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해, 고교 내신관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하고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대부분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하는 강남 사립고교의 우수한 학생들 틈에서 성적이 전교 1등으로 향상되긴 불가능에 가깝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놀았다면 가능한 소설 같은 일이다. 단순히 성적이 올랐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평소 중하위권이었던 수학을 전교 1등을 하고 1차 답안에서 오류가 났던 문제를 틀린 것까지 똑같다고 하니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결국 국민청원 게시판에 “A고교에서 시험지 유출 등 부정이 있었는지 조사해 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와 교육당국이 특별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학교 측이 “두 학생이 공부를 잘했을 뿐 문제없다”는 식의 단순한 대응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있다. 80%에 가까운 수시, 학종 대입제도로 인해 내신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자녀의 시험문제를 검토하고 결재하는 교무부장에 부모를 보직시킨 학교의 잘못이 가장 크다. 대부분의 교사 부모는 자녀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을 불편해 해 부모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요청하거나 아이들을 다른 학교에 진학시킨다.

출퇴근, 통학 문제로 불가피하게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닐 경우 동일 학년 담임배제, 수업배제, 출제배제, 감독배제 등 자녀의 교육활동에 전혀 관여할 수 없도록 배치하는 것이 규정이고 순리다. 학부모가 교무부장이란 보직에 있으면 위 규정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 학교 측은 “교감으로 승진할 교사에게 교무부장 보직을 주는데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보직에서 배제하는 건 맞지 않다”는 구차한 이유를 댄다. 최소한 자녀가 졸업할 때까지는 교무부장 보직에서 물러나도록 조치했어야 옳다. 자녀가 보는 시험지를 학부모가 검토하고 결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힘들고 공정하지 못하다.

학교 고사관리 절차는 해당 과목의 교사가 문제를 출제 후, 출제된 문제를 고사계 교사에게 제출한다. 고사계 교사는 과목 코드나 시험 일자, 일반적인 시험양식 준수 여부 등을 1차로 점검하고 날인을 한 후 시험문제를 교무부장(학교별, 지역별로 달라 연구부장이 하는 경우도 있다)에게 넘기면 교무부장이 2차 검사를 한다. 모든 과목의 시험문제와 답안지를 고사계나 교무부장은 다 볼 권한을 갖는다. 다음 교감, 교장 순으로 날인을 하여 검사가 완료된 시험문제는 인쇄실로 넘겨진다. 인쇄실은 학교의 등사 담당 주무관이 열쇠를 관리하며 행정실에도 키를 보관하고 있어 행정실장도 출입이 가능하다. 얼마 전 행정실장이 시험지 유출에 관여된 이유이다. 과목교사, 고사계, 교무부장, 인쇄실 등을 거치는 허술한 고사관리 체계로 인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출이 가능한 것이 고교 시험문제이다.

경기도 교육청은 부모가 교사로 재직 중인 공립고교에 자녀가 진학할 경우 부모를 다른 학교로 전근 보내는 ‘상피제’를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도 부모가 근무하는 공립고교에는 관행적으로 자녀를 배정하지 않는다. 사립학교법을 적용받는 사립학교에서만 부모인 교사와 자녀가 함께 다니는 걸 막을 근거가 없어 생긴 논란이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돼야 할 이유이다.

최근 10여년간 내신과 학생부를 중심으로 학생을 뽑는 수시 비중을 꾸준히 늘려 온 것이 최근의 시험지 유출 사태의 원인이다. 같은 반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고 이겨야만 자기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입시제도가 결국 내 자식만 위하고 다른 자식의 성취를 의심하는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 국민들은 부정의 소지가 많은 수시와 학종을 폐지하고 정시를 확대하기를 요구하지만 교육 당국은 수시와 학생부의 전도사가 되어 정당화하려 한다. 곳곳에서 터지는 불협화음이 수시, 학종 제도가 불공정하고 불명확한 게임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다. 부정, 변칙, 반칙이 개입될 여지가 충분한 이 제도를 옹호하는 교육계 인사들의 속뜻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전교 1등 성적의 정당성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떠나, 수시와 학종이 존재하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교사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는 걸 제도적으로 막기 위한 법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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