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는 않은 상봉… 당사자 아닌 조카와 상봉한 이산가족
너무 늦지는 않은 상봉… 당사자 아닌 조카와 상봉한 이산가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리상철(71) 씨와 만나 안부를 묻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리상철(71) 씨와 만나 안부를 묻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기다리던 형님은 돌아오지 않아”
1950년 당시 北 납치로 납북 많아

[천지일보=이민환 기자] 남북 이산가족들이 20일 금강산 호텔에 마련된 상봉장에서 65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날 상봉장에서 만난 이재일(85)씨는 6.25 전쟁 당시 납북된 형님과 헤어질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18세였던 이씨의 형님은 1950년 전쟁 당시 인민군들이 고향인 충북 청주까지 내려와 피난길에 올랐지만 그사이 형님은 납치됐다.

이씨는 형님의 아들들인 조카들과 만나 “형님이 납치된 뒤 아버지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앓기 시작했고 국군이 후퇴해 내려올 때마다 그 기회를 틈타 도망 오지 않을까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며 “형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1954년 11월 9일 아버지는 52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이어 “형님이 납치된 뒤 아버지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앓기 시작했고 국군이 후퇴해 내려올 때마다 그 기회를 틈타 도망 오지 않을까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면서 “형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지난 1954년 11월 9일 아버지는 52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날 상봉장에 그리워하던 형님이 아닌 조카들이 나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안북도 용천이 고향인 이영부(76)씨는 아버지와 상봉을 바라며 생존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북에 형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상봉신청을 해 조카들을 만났다.

이씨는 “6.25 당시 북에서 많은 사람이 남으로 피난 오는 상황이었고, 인력이 부족해진 북 당국이 남한 사람들을 많이 납치해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1950년 9월 27일 납북됐다. 당시 8만명이 납북되던 시기였다. 북이 남쪽 사람들 신상을 파악해서 쓸만한 사람들을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가 인민군에 납치됐지만 북에선 자진 납북이라고 주장해왔다”고 덧붙였다.

한편 통일부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전 미리 국군포로 및 납북자 50명을 별도로 선정해 북측에 생사 확인한 바 있다.

통일부에는 50명 중 북측은 총 21명의 생사를 확인했고, 29명은 확인 자체가 불가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2000년 11월 2차 상봉부터 2015년 20차 상봉까지 350명의 국군포로 납북자 의뢰해서 이 중 112명의 생사를 확인했고, 생사가 확인된 인원 중에서 상봉한 가족은 54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