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연일 계속됐다. 충남 연기군 동면 응암리 고정(高亭, 일명 높은정이)마을에 들어서니 불볕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벼들이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다. 머지않아 알곡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벼들은 가마솥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이 벼들은 친환경 우렁이농법을 통해 자라고 있다. 흑미 찹쌀 홍미 찰보리쌀 청미 미향미…. 쌀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까 싶다. 이곳은 오색 빛깔 쌀이 다 모였다고 해서 이름 하여 오색농장이다.

▲ 친환경 오색쌀을 짓는 김기윤(오른쪽) 씨와 아들 김민호(왼쪽)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자신 있어요, 100% 오리지널입니다”
빛깔 고운 오색쌀로 만든 가래떡 인기 최고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마을 중간 지점에 위치한 농장 바로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집 한 채는 농장을 수호하는 신처럼 농장을 지켜보고 있다.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대문만한 큰 창문이다. 창문 밖으로는 쑥쑥 자라나는 벼들이 보인다. 집 안에서까지 농장을 볼 수 있는 집 구조가 인상적이다. 이렇게 오색농장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주인은 누구일까. 주인공은 바로 김기윤 김민호 김 씨 부자(父子)네다.

“땅에서 열매를 맺는 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몸으로 느껴요. 그래서 손을 놓지 못하고 기쁜 마음으로 땅을 가꿉니다.”
김기윤(56) 씨는 이래 뵈도 전업 33년 지기 농부다. 50대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 활용도가 높다. 김 씨는 인터넷을 농기구 삼아 오색농장 블로거를 운영하고 있다.

파워 블로거들과 쌓은 우정으로 본인이 수고한 수확물을 턱하니 선물하기도 한다. 농촌 인심이라 그런지 도시 사람들에겐 흔치 않은 일이다. 파워 블로거들은 이런 호의에 입소문으로 답례를 대신한다.

블로그 일구는 신세대 농업인

“씨를 뿌리자 죽은 듯한 땅에서 생명이 자라나는 것이 신비로웠어요. 자꾸 해보고 싶어 아버지께 졸랐죠.”
아버지 대를 이어 생명을 일구는 농업인을 꿈꾸는 김민호(28) 씨. 다들 도시로 나가지 못해 안달인데 농사를 짓겠다니. 대학 4년 여름방학, 한참 취업 고민을 하던 중 ‘아 이거다’ 싶어 꽂힌 것이 바로 농업인이란다.

민호 씨는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 농업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게 농업을 택한 주효한 이유라고 했다.

“1년 조금 넘게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허락을 받았어요. 농업하면 못살고 힘들다는 이미지는 싫습니다. 다른 젊은 농업인들과 함께 농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싶어요.”

기윤 씨는 1년 전만 해도 아들만큼은 농업인이 아니길 원해 뜯어말렸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제 아들과 농사를 짓는 게 든든한 모양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인 듯했다.

그는 “모든 물가는 올라가는데 쌀값만 떨어진다”면서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타당한 대가를 인정받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 기윤 씨는 틈나는 대로 오색농장 블로그를 농기구 삼아 또 다른 인터넷 농장을 가꾸고 있다. 오른쪽은 김 씨 부자가 생산하는 오색쌀. ⓒ천지일보(뉴스천지)

기윤 씨가 철칙처럼 지켜온 신념은 ‘신뢰’다. 기윤 씨는 그의 아들도 동일한 마음을 가졌으면 했다. 그는 “소비자가 ‘농업인’하면 ‘정직하다’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땅이 살고, 안전한 농산물을 수확하기 위해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이런 신념이 통했는지 도·군에서도 인정받아 우수 농업인과 우수 농업 경영인으로 선정됐다.

그가 사용하는 우렁이농법은 모내기 후 우렁이를 방사해 잡초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제초효과가 거의 10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기윤 씨는 또한 화학비료 대신 돼지 분뇨 액비를 썼다. 이는 생태환경을 살리면서 생산비도 절감하고, 고품질의 안전한 친환경쌀을 생산할 수 있다.

기윤 씨가 인터넷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통해서다. 동창 카페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기윤 씨는 독학으로 인터넷 공부를 시작, 오색농장 블로그를 운영해 소소한 농업일지를 소개하고 있다. 오랜 시간 비비람을 견디며 흙을 일궈 단단해진 기윤 씨의 손이 틈나는 데로 찍은 사진을 올리느라고 바쁘게 움직였다.

블로그 속 사진에는 장태평 전 농림부 장관이 북을 들고 기윤 씨가 꽹과리를 치면서 사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있다. 연기군 농촌체험가공연구회 회장인 기윤 씨가 작년 여름 장 전 농림부 장관과 연구회 회원들과의 번캐팅을 성사시킨 것이다. 특히 그의 블로그에서 단연 빛깔 고운 오색가래떡이 인기다. 보는 즐거움에 맛도 일품인 가래떡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오색쌀로 만들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애로사항도 있었다.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은 유기농 쌀로 가래떡을 만들다 보니 보관을 잘해야 한다. 방부제 첨가된 식품과 동일하게 상온에 그냥 놔두면 상태가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기윤 씨는 “방부제 제품에 익숙한 소비자분들이 가래떡을 받고는 실내에 방치하기 쉽다”며 “포장지에까지 적어놔도 곰팡이가 생겼다고 연락이 올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 오색쌀로 만든 가래떡.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은 보기만해도 군침이 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아들이 농업인의 길을 선택한 만큼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농업인이 되길 바랐다. 또 기윤 씨는 머지않아 오색가래떡을 직접 가공할 수 있는 작은 공장을 제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농민들의 땀의 결실이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우리 쌀맛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문의) 041-864-5750, http://blog.daum.net/rld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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