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의 국정과제로 제시한 ‘공정사회’ 구현의 화두(話頭)가 갖는 파급력의 크기를 정확히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작은 실바람에 그칠지, 나무가 넘어지고 뿌리가 뽑히는 강력한 태풍이 될지, 공정사회 구현의 운동(Campaign)을 몰아가는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이 캠페인의 일파(一波)만으로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들, 딸을 특채한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줄줄이 낙마했다. 이것으로 공정사회 구현의 화두가 갖는 파괴력과 방향성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정사회 구현의 화두가 겨냥하는 일차적인 표적은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적 역학(力學)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기에 눈치 빠른 정치권과 공직사회, 불공정 거래 관행이 고질화된 재계가 내심 떨고 있거나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캠페인은 성격상 대통령이 ‘나부터 엄격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발원지(發源地)의 솔선수범이 불가피하다. 그래야 명분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자칫 감싸 안아야 할 ‘내 식구’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피해 갈 수 없는 양날의 칼이 되는 모험도 안겨져 있다.

이렇게 권력의지가 실리고 강제력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실천하고 안 하고가 임의와 자율에 맡겨지는 민간운동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알기에 전체 국민이 공정사회 구현이라는 캠페인을 ‘마땅히 올 것이 온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더욱 비상하고 긴장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엄격하게 공정사회의 잣대를 들이댈 때는 자기 관리에 실패한 고위 공직자는 살아남을 길이 없음을 얼마 전 있었던 ‘공정사회 캠페인 일파(一波)’의 희생자들이 웅변해주었다. 일단 공직사회에 엄청난 경각심을 심어준 것이 틀림없다. 공직사회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기업들도 중소 협력업체들과 공정한 상생(相生)의 길을 가야지 관행화된 횡포를 계속하거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하고도 내심 뜨끔한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거대 자본의 힘으로 재래시장의 소상공인이나, 골목 구멍가게 서민의 모기 눈물 같은 영세한 ‘유통(流通)’ 사업의 이익마저도 다 휩쓸어 가는 야비함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막걸리나 요식업을 비롯해서 돈벌이가 좀 된다 싶은, 중소 업자들에게 딱 알맞은 사업에 공룡 같은 몸집을 디미는 탐욕도 버려야 한다. 대기업은 ‘세계를 경영’하거나 좀 더 큰 사업으로 돈도 벌고 세금 많이 내어 보국(輔國)하고 경제의 경쟁력을 키워야 공정하지 않은가.

우리는 속성으로 산업화를 이룩하고 진통 끝에 민주화의 꽃을 피워냈다. 그 과정에서 불공정 관행과 도덕적 해이, 계층 간 갈등과 무질서가 어쩌면 우리의 ‘문화’처럼 자리를 잡고 고질화됐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벌일 수밖에 없는 ‘공정사회’ 구현의 캠페인이 지니는 당위성이나 정당성에 누구도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한 고비를 더 뛰어넘어 당당한 국격의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안착(安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은 바로 모든 계층이 공정한 룰(Rule)에 복종하는 ‘공정사회’의 구현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투명사회, 국제 경쟁력이 한층 강화된 글로벌 경제국가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부에서처럼 ‘공정사회’ 구현의 화두를 정치적이나 정략적 시각만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무리가 따른다. 성숙한 사회로 가는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인 한 오히려 출발이 늦었다 할 수 있다.

‘비판’은 자유이지만 비판이 ‘명분’과 ‘대의(大義)’를 이기거나 탄력이 붙어가는 공정사회 캠페인의 기세를 꺾어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본질적으로 ‘공정사회 구현’은 공정한 룰의 복원과 사회 전체의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차원의 의식 개혁 운동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어느 계층의 정당한 몫을 빼앗거나 그것을 다른 계층에 옮겨 주는 말하자면 기조적인 사회 구조를 손대는 혁명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정사회 구현의 화두가 친서민, 중소기업과 소상인 친화적인 구호와 함께 추진되면서 우월적 기득권을 누리던 계층에서 일종의 심리적인 공황(恐慌) 상태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손에 쥐어진 기득권이란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변화를 이루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렇기에 사회 전체의 견인력(牽引力)과 활력(活力)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공정사회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비록 작은 저항일지언정 이 같은 사회 발전 중심세력의 저항을 설득하고 달래면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dilemma)가 있기에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하는 것인가. 그런데 어쩌랴. 대통령은 이미 호랑이 등을 타고 중도에 내릴 수 없는 기호지세(騎虎之勢)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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