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여성 독립운동가, 들꽃으로 피어나다
[정치평론] 여성 독립운동가, 들꽃으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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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해마다 5월이면 ‘밀양아리랑’의 고향 밀양에서는 ‘아리랑 대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지난 5월 17일부터 영남루와 밀양강변 일원에서 열렸다. 벌써 60회째다. 그런데 올 행사에서는 좀 이색적인 장면이 눈에 띄었다. ‘역사맞이 성화 봉송 거리행렬’이 열렸는데 이 행렬 가운데 참가 시민이 든 피켓에는 ‘3.13 밀양 만세운동’과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라는 글귀가 시선을 모았다.

2015년에 개봉된 영화 ‘암살’은 김원봉이라는 항일독립운동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적인 영화라 하겠다. 여기서 김원봉을 연기한 조승우는 중절모와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타케트(target)’라는 억센 톤의 발음을 한다. 영화 제목인 ‘암살’과 ‘타케트’, 그것만으로도 그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밀양 시민들을 흥분케 한 단 한마디의 대사,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라고 말한다. 바로 이 한마디의 대사가 그대로 밀양 시민들의 자부심으로 이어져 ‘아리랑 대축제’에 등장한 것이다.

산야에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어나다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의열단(義烈團), ‘정의(正義)를 맹렬(猛烈)히 실행’하고자 했던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그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은 일제가 거액의 상금을 내 걸 정도로 전설적인 전사였다. 해방 후 친일파 주구들의 추격을 피해 월북했다는 이유로 우리에겐 뒤늦게 알려졌지만 김원봉은 항일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뒤늦게라도 그의 삶은 재조명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의 불꽃같은 삶의 동반자인 박차정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박차정은 일제에 항거에 자결한 부친을 비롯해 오빠들도 신간회와 의열단에서 활동한 항일독립운동가 집안의 딸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김두봉(金枓奉)과 사촌, 김약수(金若水)와 육촌 사이로 전해지고 있다. 박차정은 19세이던 1929년 광주 학생운동을 배후에서 지도한 ‘근우회’의 핵심 인물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근우회 활동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박차정은 둘째 오빠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한다. 그 직후인 1931년 김원봉과 결혼하면서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선다. 1932년 난징에서 김원봉과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그 후 1939년 2월 곤륜산(崑崙山) 전투에 나섰다가 큰 부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4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34세, 짧았지만 그녀 역시 불꽃같은 삶이었다. 

중국에서 흑룡강(黑龍江)이라 부르는 러시아 아무르강,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사랑보다 더 찬란한 항일독립투쟁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주요 무대가 바로 이 부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 그녀는 1885년 극동 시베리아 우수리스크에서 한인 2세의 딸로 태어나 소련공산당의 전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지도자로, 그리고 레닌과 함께 볼세비키 혁명의 전사로 활동한 혁명가였다. 1918년 1월 하바로프스크의 당서기가 됐으며 그 해 4월 이동휘(李東輝), 김립(金立) 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결성했다. 한인사회당은 ‘반일반제(反日反帝)’를 표방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산주의 정당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아무르강을 중심으로 볼세비키 적군(赤軍)과 이에 대항하는 백군(白軍), 백군을 지원하는 일본군이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 일대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민간인까지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그 즈음인 1918년 9월 김 알렉산드라는 백군에 체포돼 서른 세 살의 꽃다운 나이에 총살돼 시신이 아무르강에 수장된다. 그녀는 총살 직전 조선독립을 상징하며 아무르강 모래밭을 13발자국 걸었다. 그리고 바로 뒤 총살됐다.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는 여성 항일독립운동가의 짧은 삶이었다. 이후 하바로프스크를 탈환한 적군은 그녀를 추모해 아무르강 물고기를 2년간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2009년에야 그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이들뿐이 아니다. 고단하고 치열한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전사들의 얘기는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아직 야산에 핀 들꽃들의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의병장’으로 부르는 윤희순은 항일독립운동의 명문가 출신이다.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격분한 시아버지 유홍석이 의병장으로 출전하자 윤희순도 여성 의병대를 조직해 그 뒤를 따를 정도였다. 이후 만주로 떠나 그 곳에서 일생을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녀의 아들 유돈상도 1935년 6월 일경에 체포돼 고문 끝에 옥사했다. 그녀 역시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만주 벌판의 들꽃으로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의 모델이라 해서 주목받았던 남자현은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열혈 여전사이다.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로 잠입했을 정도로 무장투쟁과 테러활동 최전선에 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1만 4830명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2%인 296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여성이라는 조건이나 자료 미비 등이 컸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보훈정책까지 소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정부가 여성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발굴하고 보훈정책도 더 활발하게 펼칠 것이라는 소식이다. 수많은 항일투사들 뒤에서 뜨겁게 또는 묵묵히 그 길에 동참했던 이 땅의 여성 항일독립투사들, 앞으로 더 자랑스런 이름으로 또는 그마저도 어렵다면 산야에 피어있는 들꽃으로 활짝 피어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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