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부산진구청 건축·건설·환경녹지과 등 담당자가 현장을 찾아 몇 곳을 발굴한 결과 나온 슬레이트 잔재. (제공: 인근 피해자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천지일보 2018.8.15
지난 10일 부산진구청 건축·건설·환경녹지과 등 담당자가 현장을 찾아 몇 곳을 발굴한 결과 나온 슬레이트 잔재. (제공: 인근 피해자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천지일보 2018.8.15

부산진구청 담당 “미미한 부분인데…”

주민 “탁상행정의 극치… 화 치밀어”

[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부산에 위치한 한 철거현장서 1급 발암물질 슬레이트가 땅에 묻힌채 발견됐다. 이는 지붕 해체 공사 과정에서 철거를 맡은 한 업체가 관련 규정을 무시한 채 철거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1급 발암 물질로써 석면슬레이트는 폐기물관리법상 지정폐기물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 석면가루를 흡입할 경우 최장 50년의 잠복기를 거쳐 각종 중피암 및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석면 관련 현장 작업에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이같은 물질이 인체내로 흡입될 시 방사능에 노출됐을 때보다 질병 유발 위험도가 20배 이상은 높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석면슬레이트 방치 논란’에 휩싸인 곳은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 850번지 일대로 지난 4월부터 서면지역주택조합으로부터 철거를 위임받은 ㈜구덕종합개발이 철거공사를 진행 중이다.

산업 보건 안전법에 따르면 석면 해체 제거 작업 시 발생한 석면함유 잔재물 등은 비닐이나 그밖에 이와 유사한 재질의 포대에 담아 밀봉한 후 별도 표지를 붙여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구덕종합개발은 철거한 슬레이트 잔재를 그대로 묻어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을 인근 아파트 주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청에 신고해 지난 10일 구청 건축·건설·환경녹지과 등 담당자가 현장을 찾았다. 담당자가 현장 몇 곳을 발굴한 결과 슬레이트 잔재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구청 고위 담당자는 “법적으로 책임을 물어 고발할 방침”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하지만 비상대책위 A위원장은 구청의 안일한 대처에 불만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비상대책위 A위원장은 부산진구청 폐기물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이 정도는 미미한 사안인데 넘어가면 안 되겠나’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A위원장은 해당 구청직원에 “행정처분을 내리고 기준대로 하길 원한다”고 대답했고 그제야 “폐기물법으로 조치를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어 구청 폐기물 담당자는 지난 13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현장을 둘러본 결과 몇 조각을 발견했고 매립된 부분으로 볼 수는 없었다”며 “몇 조각 떨어져 있는 미미한 부분이었지만 비상대책위에서 강력하게 단속을 요청해서 폐기물관리법 위반은 맞다고 본다. 조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지난 4월부터 서면지역주택조합으로부터 철거를 위임받은 ㈜구덕종합개발이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850번지 일대 철거공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소음·먼지 등 피해를 호소하며 인근 주민들이 철거현장 입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5
[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지난 4월부터 서면지역주택조합으로부터 철거를 위임받은 ㈜구덕종합개발이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850번지 일대 철거공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소음·먼지 등 피해를 호소하며 인근 주민들이 철거현장 입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5

 

또 ‘비상대책위가 제시한 사진을 봤는지’를 묻자 구청 폐기물 담당자는 “부산진구청에는 여러 곳의 공사현장이 있고 사진만 봐서는 확인할 수 없다”며 “사진은 조작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비상대책위에서 제보한 사진과 동영상 속 발굴한 현장에는 제법 많은 슬레이트 지붕 잔재가 널브러져 있었으며 이는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대책위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석면함유량이 1% 초과한 지붕재(슬레이트)를 해체·제거할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에 따라 사전에 해당 지방노동관청에 신고를 한 후 작업해야 하고 고용노동부에 등록된 석면 조사기관을 통해 석면 사전 조사를 의뢰해야 한다.

또한, 지방노동관서에 등록된 석면 해체, 제거업자를 통해 작업이 이뤄져야 함에도 해당 현장에서는 무작위로 철거한 흔적이 드러났고, 작업자의 안전과 작업장 주위의 오염을 막기 위한 사전준비 절차와 장비, 시설기준마저 전혀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인근 주민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비상대책위 A위원장은 “학생들의 등·하굣길로 이용되는 현장 주위에 사고 위험이 있음에도 구청은 뒷짐 진 지 오래됐다”며 “이런 실정에서 구청 공무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불만 섞인 하소연을 했다.

한편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850번지 일대 철거현장에는 2개월째 피해자 주민모임인 비상대책위가 꾸려져 소음·비산먼지·가림막 등 피해를 호소하며 시위를 펼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철거현장에 무단 방치된 슬레이트지붕 잔재. (제공: 피해자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천지일보 2018.8.16
철거현장에 무단 방치된 슬레이트 잔재. (제공: 피해자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천지일보 2018.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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