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한국변검연구소 대표. ⓒ천지일보 2018.8.14
김동영 한국변검연구소 대표. ⓒ천지일보 2018.8.14

하회탈·봉산탈 등 전통 가면 활용
“변검 공연으로 한국 탈 알리고파”
사부와 ‘韓中변검 배틀’ 벌이기도
“정부가 지역의 탈 홍보정책 펴야”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한국의 전통 가면을 쓴 그가 무대에 오르면 신비감이 감돈다. 춤사위가 시작된다. 관객의 시선은 그의 얼굴로 집중됐다. ‘휙휙휙’ 그의 몸짓에 얼굴이 순식간에 바뀐다. 말로만 듣던 변검 공연이다. 좌중에선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중국의 3대 전통 연희중 하나인 천극의 하이라이트인 변검 공연은 순간예술입니다. 찰나의 기교로 관객을 사로잡고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어떤 동작을 만들고 창작하는 것은 연희자의 몫입니다.”

연극배우 김동영은 한국 변검의 창시자다. 중국에서 배워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한국의 옷을 제대로 입혔다. 더 발전시켜 새로운 전통문화의 길을 열었다. 그는 한국 변검 알리기에 앞장서오고 있다. 전국에서 많게는 1년에 30회까지 공연을 한다. 국내엔 그 말고도 변검 공연자가 몇명 더 있다. 그러나 배우출신은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의 공연이 다른 이보다 예술성에서 강점을 갖는 이유다.

변검은 배우가 손을 대지 않고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는 가면술이다. 중국 쓰촨성 지방의 전통극 천극에서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중국에선 ‘꽃 중의 꽃’으로 불린다. 오천명 감독이 만든 영화 ‘변검(The King of Mask, 1995)’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졌다. 한국 변검은 중국 기술에 한국 전통의 옷을 입힌 것이다. 변검 기술 자체는 중국의 기예를 모티브로 하지만 옷과 가면, 음악, 춤은 모두 한국의 것이다.

변검 전문 배우 김동영의 공연엔 항상 한국 탈이 등장한다. 안동하회탈, 봉산탈, 강릉관노가면, 전통도깨비문양, 그리고 양주별산대놀이,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등에 쓰이는 탈이다. 중국 가면은 쓰지 않는다. 변검 공연을 통해서 한국의 탈을 알리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한국의 전통 탈과 의상, 춤을 소재로 변검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김동영)
한국의 전통 탈과 의상, 춤을 소재로 변검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김동영)

마당놀이 전문인 ‘극단 미추’ 출신인 김동영은 지난 2004년 서울연극제에서 남자배우 연기상을 수상한 실력파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왜 중국의 변검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연극배우 시절 영화 ‘변검’을 본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영화의 휴머니즘에 감동한 그는 변검 연기를 꼭 배우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난관이 있었다. 그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서자와 타지역 사람, 여자한테는 전수하지 않는다는 계율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외국인이었던 그는 감히 배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한 중국 경극 배우의 소개로 중국인 사부를 만났다. 연극배우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1000만원 가량을 교육비로 냈다. 작화 방법, 가면과 옷 제작법, 변검 동작 등을 1주일 동안 세밀하게 배웠다. 특별 허락을 받아 영상도 촬영했다. 그는 사부에게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것을 창작해 공연으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사부는 “네가 가면 뿌리를 잘 내려라. 너는 내 외국 1호 제자”라고 했다.

변검을 배울 때는 중학교 졸업 후 양복점 근무 경험이 도움이 됐다. 사장과 미싱사 등 직원들의 갑질에 시달리면서 바지와 와이셔츠 만드는 기술까지 배우고는 일을 그만 뒀다. 그때 배운 기술이 복잡한 변검 옷을 제작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그는 “과거에 배운 기술을 지금 사용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참으로 감사했다. 그 기술을 안 배웠더라면 변검 옷을 제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한국 변검이 탄생했다. 지난 2008년 열린 ‘양주 세계 민속극 축제’에선 사부와 제자의 한판 대결이란 진귀한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른바 ‘한중 변검 배틀’이다. 사부는 중국 변검을, 김동영은 한국 변검을 공연했다.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축제 중 가장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사부는 공연이 끝난 뒤 그에게 “너를 제자 삼기를 잘했다. 네가 중국 변검을 했다면 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의상을 입고 한 변검 공연에 사람들이 환호할 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 변검을 바라보는 국내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변검 자체가 중국에서 비롯됐기에 우리 전통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동영은 “전통이라는 것은 시대에 맞게 흐른다. 생황, 양금 같은 우리나라 전음악에서 쓰이는 악기도 옛날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고, 해금과 가야금 같은 우리 악기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라며 “예술은 어떻게 정착되느냐에 따라 전통이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비보이를 예로 든다. 서양에서 들어왔지만, 한국 비보이가 워낙 잘하다 보니 외국에서는 한국이 종주국처럼 돼 있다. 우리 정부가 정책적으로 충분히 뒷받침한다면 변검도 한국의 것으로 승화되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더구나 변검에 한국 전통 탈을 접목한 덕에 한국 탈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수단도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난 2017년 12월 1일 미국 LA초청공연 직후 기념촬영한 모습. (제공: 김동영)
지난 2017년 12월 1일 미국 LA초청공연 직후 기념촬영한 모습. (제공: 김동영)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동영은 “우리나라엔 안동 하회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많은 종류의 탈이 있다. 국가가 지역의 탈을 알리는 정책을 편다면 국민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동영은 최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축하하는 기념 공연인 ‘2018 원주윈터댄싱카니발 프린지페스벌’에 초청받아 전통 탈과 한복으로 갈아입은 한국식 변검의 신명과 흥을 세계인에게 알렸다. 또한 지난 2015년 5월에 선보인 러시아 원작 연극 ‘플라토노프’에서 변검을 접목해 화려한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양주세계민속극축제, 안동하회국제탈춤축제, 미국 LA 한국문화원 행사 등 국내외에서 수백 회 공연을 해온 김동영은 현재 사단법인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 및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김동영 약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문학과 학사 졸업.

세종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연기전공) 석사 졸업.

한국변검연구소 대표.

2004년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수상.

한국변검, 한국 인형변검 창시자.

경극변검 주홍무 선생에게 사사.

2014 글로벌문화콘텐츠 추계학술대회(1인 공연예술로서'한국변검'의 창작적 특징과 가치 탐색).

세종대학교 글로벌지식원 출강.

(現)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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