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들은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국회에서 집행되는 특활비 규모는 연간 62억원 가량으로 이 돈으로 국회의원들은 용처나 영수증 없이도 편리하게 사용해왔고 이미 알려진 바대로 일부 정치인들은 생활비와 자녀유학비로 사용했던 것이다. 여야 합의 후에 문 의장이 “의정사에 남을 쾌거”라 평가했던 국회 특활비가 원내대표 몫 15억원만 폐지되고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 몫 47억원 가량은 그대로 존속되거나 조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야 원내대표들의 국회 특활비 폐지 합의가 끝난 후 국회 이계성 대변인의 “특활비 전부를 없애는 게 아니다”는 설명이 없었더라면 국회 특활비 62억원 전액이 완전 폐지되는 줄 국민은 알았을 것이다. 일부 소수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국회 특활비가 완전 폐지되는 줄 알고 환영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마치 쌈짓돈처럼 쓰면서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국회가 이번에는 뻔히 보이는 꼼수를 쓰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정보 및 사건수사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하는바, 그 집행에 있어 수령자가 서명만 하면 되고, 영수증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눈 먼 돈’이다. 그런 점 때문에 연간 전체 액수가 1조원에 달하는 특활비를 권력기관들이 선호했던 것이고, 대법원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기존에 없던 특활비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올해 특활비는 기밀업무가 많은 국정원이 행정부 중 가장 많은 약 4900억원을 사용하고, 국방부가 1479억, 경찰청 1030억원이며 국회 몫은 62억 7200만원으로 배정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야 원내교섭 대표들은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 특활비 처리에 관해서는 문희상 의장에게 일임했고, 문 의장은 부의장과 상임위원장과 협의를 거쳐 조만간 국회 차원의 특활비 제도개선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특활비 문제로 국정 사단(事端)이 나고 비리가 발생한 마당에 국회는 국민을 기만하는 꼼수를 쓰지 말고 대의로 나서주기 바란다. 적폐 청산에 앞장서야 할 문 의장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고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