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의 수하 이숙이 적토마와 금은보화를 가지고 여포를 찾아갔다. 입이 떡 벌어진 여포는 적토마를 가지고 온 이숙에게 술상을 차렸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이숙이 허와 실을 따져 주인 섬기기를 말하자 여포는 마음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여포가 이숙에게 말했다. “형은 조정에 있으므로 열인(閱人)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하오. 당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영웅이오?”

그 말에 이숙은 얼굴빛을 고치며 근엄하게 말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두루 보았으나 아마 동탁만한 인물이 없을 줄 아네. 동탁은 어진이를 공경할 줄 알고 선비를 예로서 대접해 상벌이 분명하니 대업을 마침내 이룰 인물이라 생각하네.”

이숙의 말을 듣는 여포의 마음은 벌써 반 넘어 기울어지고 있었다. “내가 동탁한테 가고 싶어도 길이 없어 못 가오.”

이때 이숙은 종자들에게 들려 가지고 왔던 금은보화가 들어 있는 보자기를 끌렀다. 황금덩이와 명주 구슬과 옥띠가 여포의 눈앞에 휘황찬란한 빛을 뿜었다. “아니 이게 다 웬 것들이요.”

이숙은 종자들을 방에서 물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 물건은 동공이 오래 전부터 현제의 큰 이름을 사모해 특별히 나를 보내서 예물로 드리라 한 것일세. 적토마도 실은 동공이 보낸 것이네.”

여포는 얼굴빛을 고쳤다. “동공이 이같이 나를 생각하니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오.”

“나같이 재주가 없는 사람도 호분 중랑장 벼슬을 시켜 주었는데 현제 같은 인물이 가기만 하면 말할 수 없는 귀한 신분이 될 것일세.”이숙의 달콤한 말은 점점 더 여포의 귀를 끌어당겼다.

“티끌만한 공도 없는데 빈손으로 어떻게 동공을 가 뵙는다 말인가?”

“현제로서 공을 세우기는 손을 한 번 뒤집을 사이에 될 일이 있는데 현제가 즐겨서 하려고 들지 아니할 뿐이지.”

여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 자사를 죽이고 군사를 이끌어 동탁한테로 가면 어떻겠소?”

여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숙은 속으로 가만히 쾌재를 불렀다.

“현제가 만약 그같이 한다면 참으로 막대한 큰 공이 될 것일세. 그러나 일이 더디어서는 아니 되네. 빠른 결단을 내야 하네.”

“그럼 내일 정원의 목을 베어 가지고 동공한테로 항복을 하러 가리다.”

“그러세. 그럼 내일 만나기로 하세.”

이숙은 여포의 손을 굳게 잡은 뒤 진문을 나와 동탁한테로 돌아갔다.

이날 밤 이경(二更)이 되자 여포는 큰 칼을 차고 정원의 장중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정원은 밤이 깊었으나 잠들지 않고 촛불을 밝힌 채 병서를 읽고 있다가 여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가워했다.

“오, 우리 아들이 왔는가. 아직 자지 않고 무슨 일로 왔는가?” 정원의 목소리는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여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당한 대장부인데 네까짓 놈의 아들이 되겠느냐?”

정원은 깜짝 놀라고 기가 막혔다. “네가 실성을 했느냐.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냐?”

정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이었다. 여포는 칼을 빼어들고 정원한테로 달려들어 그의 목을 베었다. 여포는 시각을 지체하지 않고 큰소리로 진중에 외쳤다.

“정원이 어질지 못하여 내가 이미 죽였으니 나를 따르는 자는 이곳에 남아 있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이곳을 떠나도 좋다.”

여포의 그 말에 군사들이 태반이나 흩어졌다. 날이 밝자 여포는 정원의 수급을 가지고 이숙을 찾아가자 그는 여포를 동탁한테 데리고 갔다. 동탁은 크게 기뻐하며 술을 내어 대접하며 여포에게 절을 먼저 올렸다. “이제 장군을 만났으니 마치 가뭄에 비를 만난 듯하오.”

동탁의 말에 여포가 황망히 절하며 만약 자신을 받아주면 의부(義父)로 모시겠다고 했다. 동탁은 여포에게 황금 갑옷과 비단 홍포를 내리고 흥그럽게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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