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 옷, 신분을 상징하다 (2)
[사진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 옷, 신분을 상징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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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자의든, 타의든 사람은 옷에 따라 그 말과 행동에 제약이 따른다. 옷이 특정 집단이나 소속을 상징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옷’은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고, 동시에 힘과 용기, 담대함을 주기도 한다. 소방관들이 그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용기도 제복이 주는 힘이다. 물론 남들이 갖지 못한 투철한 희생정신과 사명감이 바탕이 됐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옷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옛날 양반들은 비가 와도 절대 뛰는 법이 없다는 말처럼 말이다. 양반이 여차저차 하여 평민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갑자기 비가 억수처럼 쏟아진다고 하면 그 양반이 뛰겠는가, 안 뛰겠는가.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은 여성들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핑크(분홍)색이 조선시대에는 당상관(정3품 이상)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었다는 점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는 꼭 이 분홍색 옷을 입었어야 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복식 간소화와 사치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넓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던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두루마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널리 상용화됐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여염집 아녀자들은 장옷을 머리에 둘러 얼굴을 반쯤은 가리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옷의 경우 초기에는 서민 부녀자들만 사용했으나 후대에 오면서 양반의 부녀자들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서민층과는 다른 점이 있었으니 바로 쓰개치마를 썼다는 것이다. 이렇듯 옷의 용도는 같으나 그 색과 모양에 차이를 두어 신분과 계층을 구분하기도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의복 간소화를 통해 사치를 막고 실용성에 중점을 두기도 했다.

상국(喪國) 상복(고종황제 국장 당시)/ 1920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13
상국(喪國) 상복(고종황제 국장 당시)/ 1920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13

상국(喪國) 상복(고종황제 국장 당시)/ 1920

갑작스레 고종황제를 떠나보내야 했던 궁중 여인이 상복(喪服)을 입은 모습이다. 상국 중에는 지밀상궁만 어여머리를 할 수 있었다. 어여머리란, 가르마를 탄 뒤 뒤통수 아래쪽에서 쪽을 지고 가르마 위에 어염족두리를 쓴 후, 가체로 땋아 만든 커다란 다리(月子)를 어염족두리 위에서 양 귓가와 목덜미 위에 눌러 얹은 다음, 머리 위와 양 옆에 화려한 떨잠을 꽂고 머리 위에는 붉은 댕기로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속 여인(상궁)은 상국이라 흰옷과 흰 장갑으로 몸을 감쌌다. 보통 때는 옥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에 당의를 입는다. 여인이 머리 위에 얹은 것은 ‘첩지’로 부녀자들의 머리장식의 일부다. 첩지는 화관이나 족두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하며, 장식의 형태와 재료에 따라 신부의 상하를 표시한다.

왕후는 용첩지, 왕비와 세자빈은 광금(鑛金) 황첩지, 정경부인은 광금 개구리첩지, 정부인은 후미만을 광금한 개구리첩지, 상궁은 흑색 개구리첩지를 달았다. 영조의 가체금지령 이후 상궁은 어여머리 대신 쪽을 지고 개구리모양 첩지를 가르마 앞부분에 얹는 것으로 간소화됐다.

 

조선시대 복식/ 1900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천지일보 2018.8.13
조선시대 복식/ 1900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천지일보 2018.8.13

조선시대 복식/ 1900

흥선대원군의 복식 간소화와 사치 금지 이후 실용화되고 평등화된 복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갓과 탕건 등이 실용화됐으며 도포에서 두루마기로의 변화 등이 눈에 띈다.

사진 맨 왼쪽은 대한제국 시기 순검(포졸에서 바뀜)의 복장이다.
 

덕혜옹주 정장/ 1910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13
덕혜옹주 정장/ 1910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8.13

덕혜옹주 정장/ 1910

당의와 대란치마를 차려 입은 조선왕조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모습이다. 대란치마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비빈이 대례복으로 입는 치마다. 금박을 찍은 단을 따로 만들어서 두 층으로 붙이는데 길이는 바닥에 한 자 덩도 끌리게 하고 폭은 보통치마보다 한 폭을 넓게 만든다. 당의는 조선시대 여성예복의 하나로 간이예복 또는 소례복으로 평복 위에 입었으며,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기도 했다. 당시 공주와 옹주는 10세가 지나면 처녀로서의 옷차림인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했으며, 평상시에도 궁중의 품위와 체통을 지키기 위해 당의를 입었다고 한다. 머리에 쓴 족두리는 부녀들이 의식 때 예복에 갖춰 쓰던 관(冠)의 일종으로 영, 정조 때 가체 금지령이 내려진 후 성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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