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3주년]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 목표는 세계평화… 통일돼야 진짜 광복“
[광복73주년]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 목표는 세계평화… 통일돼야 진짜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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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지난 10일 만난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 (제공: 독립기념관)
제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지난 10일 만난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 (제공: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

광복절 구호 ‘광복의 기쁨을 통일로’

임기 내 ‘통일동산 완성’ 바라고 꿈꿔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세계평화, 어떻게 보면 어디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잖아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식민지에서 우리나라를 독립시키기도 참 힘든 일인데, 그 상황에서 늘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인류평화 세계 평화였습니다.”

제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지난 10일 본지는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을 만나 ‘독립운동가, 평화 그리고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관장은 먼저 국민 모금 운동으로 1987년에 건립된 독립기념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명칭이 독립기념관이라서 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과 역사, 그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모든 역사를 다 아우르는 기관”이라며 운을 뗐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가까운 수난’이라면 분단 아니겠나. 그래서 분단을 어떻게 극복하고 헌법이 지양하는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고민했다”며 “1990년대 독립기념관 내부에 통일 염원 공원을 조성했으며 종을 만들어 시민들과 타종행사를 했다. 이같이 독립기념관은 통일 염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13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의 모습.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13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의 모습. ⓒ천지일보 2018.8.13

현재 시대적으로 논의되는 평화와 관련, 이 관장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가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평화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단계는 나아갔다고 본다”면서 “4.27판문점 선언이 의미가 있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을 독립기념관이 더 국민들에게 밝히고 알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분단의 아픔에 대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피를 흘리며 조국의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독립을 이루고 난 다음 우리 민족이 분단돼 나눠져야 한다고 말한 독립운동가는 단 한명도 없다”면서 “독립운동가들은 우리 민족이 독립을 이루고 나면 한반도 땅에서 평화롭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체제를 원했지 ‘남북으로 나뉠거야’ 라고 생각한 독립운동가는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또 이번 8.15 기념식에 대해 “이번 행사 때 가장 바뀐 점은 구호를 바꿨다. 광복절 구호가 ‘광복의 기쁨을 통일로’ 이다. 독립기념관을 찾아오는 국민들이 그 구호를 통해서라도 통일이 우리의 당면과제라는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떻게 하면 갈라진 남북을 모을 수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외세에 의해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3.8선이 그어지고 남북이 갈라졌다. 6.25전쟁 이후 사망자뿐 아니라 이산가족도 많이 나왔다”면서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민족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민망한 분위기가 돼버렸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땐 민족의 독립을 한목소리로 외쳤는데 비슷한 기간, 남과 북이 갈라져 서로 적대시하게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은 독립운동 역사를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제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지난 10일 만난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이 본지와 ‘독립운동가, 평화 그리고 통일’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제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지난 10일 만난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이 본지와 ‘독립운동가, 평화 그리고 통일’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이 관장은 지난해 말 관장으로 취임해 올해 처음으로 광복절 행사를 치루게 됐다.

그는 “독립기념관 관장이 되기 전엔 그냥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국민으로서 광복절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광복절의 의미를 국민에게 더 많이 알려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에 올해 광복절은 유난히 나 자신에게 의미가 크다”고 토로했다.

이 관장은 독립운동가셨던 외조부에 대해 언급하며 “제가 돌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개인적인 기억은 없다”면서도 그는 “외조부님이 해방 후 쓴 일지가 있는데 외조부는 평생 군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사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조부에 대해 “어린 나이에 대한제국 시절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유학을 가셨고, 나라가 어려웠던 1919년 4월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그 시절 외조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1920년 만주에서 의병 활동(만주의 독립군활동)을 하셨던 때라는 기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때의 의병은 서양식으로 정의로운 군대로 군대가 없는 상황에서 군인이 돼 싸우는 부대다. 그는 또 “외조부 생애서 이 시기를 가장 보람 있었던 시기라고 말하셨다. 평생을 군인으로 사셨고 이 일기는 어머니가 갖고 계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보관하고 있다”면서 “내용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공식적으로 공개가 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13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독립기념관에 위치한 통일동산의 모습.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13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독립기념관에 위치한 통일동산의 모습. ⓒ천지일보 2018.8.13

기자는 질문을 바꿔 ‘취임식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과 새로운 혁신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기관을 만들겠다’는 부분에 대해 이 관장에게 질문하자 그는 “실제로 1981년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했을 때 분노한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독립기념관에 줬고 형식적으로 온 국민의 성금으로 독립기념관이 세워졌다”며 “독립기념관의 주인은 정부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독립기념관이 나아가야 한다. 또 국민들의 뜻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면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임기 내 통일동산을 완성하고 싶다는 바램도 비췄다. 그는 “통일동산을 지어놨는데 많은 사람들이 독립기념관과 통일동산을 잘 연결을 안 시키고 있다”면서 “통일동산을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국민 성금으로 벽돌 쌓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활성화가 안 됐다. 벽돌 쌓기 개인당 참여비용은 최저 5000원인데 벽돌 안에 가족 이름 등을 다 기록할 수 있다. 임기 동안 꼭 통일동산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관장은 앞으로 젊은 청년세대가 어떻게 광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를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진정한 광복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분단된 상태라 굳어진 것”이라며 “북한을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초·중·고등학교서 교육을 받았고, 북한에 대해 ‘우리가 굳이 통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전쟁만 안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독립기념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인 ‘토요역사체험’에 참여한 어린이들. (제공: 독립기념관)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독립기념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인 ‘토요역사체험’에 참여한 어린이들. (제공: 독립기념관)

이어 그는 “여기에 경제적인 논리까지 더해 ‘지금 못사는 북한하고 통일이 돼 통일비용을 젊은 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게 아니냐’ ‘우리 살기도 힘든데 더 힘들어져야 하느냐’ 등 오히려 통일을 반대하거나 소국적인 부분이 많이 높아진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젊은 사람들은 민족이란 말을 부정할지 모르지만, 민족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다. 역사를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는 기쁜 역사도 있지만 슬프고 괴로운 역사를 포함해서 잘 기억하고 있어야만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설움 중 가장 큰 설움은 나라 없는 설움이다. 나라 없는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싸웠던 분들의 역사가 200년 300년 전도 아니고 불과 100년 전, 70년 전 역사”라며 “그런 역사를 젊은 세대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렇게 살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던 역사를 기억하면서 내일을 위한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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