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수줍게 피어있는 홍련의 모습이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수줍게 피어있는 홍련의 모습이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일제강점기엔 논에 물을 대는 저수지
열두 마리 학이 내려앉은 꿈에 蓮 심어
법정스님 “정든 임 만난 듯 감회 느껴”
천년이 넘어도 꽃 피우는 씨 ‘불생불멸’
진흙 속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화중군자’

[천지일보 무안=김미정 기자] 이른 새벽 태양이 막 떠오르면 부지런히 꽃잎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꽃이 있다. 높이 꽃대를 올리며 하늘을 향해 꽃망울을 터뜨리는 연꽃은 은은한 향으로 세상을 매료시킨다. 마치 캄캄한 어둠을 물리치고 온 세상을 연향으로 메우기라도 하듯. 

일찍이 연은 고대 이집트나 인도 등에서 신화나 벽화에 자주 등장했다. 일반 식물과 달리 창조, 재생, 비옥, 다산 등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는 연이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줄기는 물에서 있으며, 꽃은 대기 중에 자라는 것을 보고 지하·지상·하늘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봤다. 또 연이 밤이 되면 꽃잎을 닫고 새벽이 되면 첫 빛을 받아 다시 피어난다 해서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특성으로 신성하게 여겼다.

이러한 연을 만나기 위해 지난 6일 본지는 무안 회산백련지를 찾았다.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지난 2001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면적은 31만 3313㎡(9만 5000여평)다.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푸른 연꽃잎이 여름 뜨거운 태양에도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푸른 연꽃잎이 여름 뜨거운 태양에도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무안회산백련지가 생기기까지

처음부터 거대한 백련지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경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로 만들어졌다. 기계도 없었던 시절 넓은 평지를 저수지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곡괭이를 들고 일했을 것이다. 노동착취를 당하고도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한 시절 선조들의 아픔을 연의 향이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백련이 가득하게 된 계기는 지난 1955년 인근 덕애마을의 정수동씨가 백련 열두 뿌리를 심고 꿈에 학 열두 마리가 내려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좋은 징조라 여겨 정성껏 가꾸기 시작해 지금의 연지가 됐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저수지로의 쓰임을 잃었다.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6일 무안군 회산백련지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마련된 출렁다리에 좋은 글귀가 나무액자에 새겨져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6일 무안군 회산백련지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마련된 출렁다리에 좋은 글귀가 나무액자에 새겨져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축제를 통해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유명해지기 전 찾은 이가 있다. 법정스님이 90년 중반에 다녀간 것이다. 당시 법정스님은 이곳을 다녀가며 “한여름 더위 속에 회산백련지를 찾아 왕복 이천리를 다녀왔다. 아!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라고 자신의 수필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기록을 남긴다. 

법정스님이 다녀간 길을 걸으며 연을 보고 있자니 ‘스님은 연 속에서 부처라도 본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1997년부터 축제가 열리기 시작해 올해로 22회를 맞이했다.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푸른 연꽃잎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푸른 연꽃잎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연꽃과 불교와의 인연

연은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석가 탄생 때 마야부인 주위에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연꽃이 피어 연꽃 위에서 태어났다는 인연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됐다. 오랜 수행 끝에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한다.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며 청정하고 지혜로운 자태에 부처로 비유하기도 한다. 또 연의 씨는 천년이 지나도 심으면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불생불멸을 상징하기도 한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시연꽃 군락지 연못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시연꽃 군락지 연못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회산백련지 입구를 지나면 열두 마리 학을 만들어둔 마음지가 있다. 사찰의 일주문에 들어설 때 세상 것 버리고 들어서듯 마음지에 잡념을 버리고 들어가라는 의미란다. 물안개가 피는 길을 지나면 출렁다리가 보인다. 이곳에도 번뇌를 떨치라는 의미에서 스님의 좋은 글귀들이 나열돼 있다.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며 출렁이는 마음도 다스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새겨진 글귀를 보고 번뇌를 하나둘 버려본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순결과 군자라는 꽃말을 가진 백련의 순결함이 보는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순결과 군자라는 꽃말을 가진 백련의 순결함이 보는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무안회산백련지만의 특징

무안회산백련지의 연은 다른 곳과 달리 꽃이 가장 늦게 피고 오래 핀다. 꽃과 잎, 연근도 가장 크다. 꽃은 처음에는 연한 분홍빛을 띠다가 차츰 순백색으로 변한다. 꽃잎을 펼치는 순간에는 세포 내 액포의 색 발현에 따라 가장자리가 연한 분홍색이지만 점차 꽃의 노화와 온도의 상승으로 액포가 작아지고 색소가 분해돼 화청소가 감소하면 순백색으로 변한다. 

연꽃은 꽃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 특징이 있다. 이른 새벽 솟아오른 연꽃은 오후면 연잎 사이로 숨어든다. 따가운 태양빛에 부끄럽기라도 한 걸까.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을 보고 싶다면 새벽에 찾아야 한다. 오후에 핀 꽃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피고지고를 반복하다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게 된다. 축제가 다가오면 물 높이를 조절해 꽃이 피는 시기를 조절하기도 한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화려한 색상의 우산터널.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남도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무안군 일로읍 회산 백련지 일원에 화려한 색상의 우산터널. ⓒ천지일보 2018.8.13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연(蓮)

뿌리부터 열매에 이르러 씨까지 어느 것 하나 버려지지 않는 연. 연잎은 녹차와 달리 다 자라고 나야 차로 만들 수 있다. 어린잎은 쌈밥용으로 사용한다. 연잎이 방부제 역할을 해 밥이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 자란 잎으로 만든 차는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며, 몸과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까끌까끌한 숨구멍이 위쪽에 있어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지는 연잎을 보는 것도 재미다. 또 바람에 일렁이는 연잎의 모습도 가관이다. 하늘거리는 치마폭처럼, 일렁이는 파도처럼 이리저리 출렁이는 연잎을 보면 저절로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폭염속에서도 우아하게 피어있는 백련의 자태가 순결과 군자라는 꽃말처럼 수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6일 폭염속에서도 우아하게 피어있는 백련의 자태가 순결과 군자라는 꽃말처럼 수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3

‘떠나시며 건네준 연꽃 한 송이 처음에는 붉디붉더니 가지 떠난 지 며칠째 인가 초라하게 시든 모습 내 모습 같아라’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를 떠나며 연꽃을 줬는데 그의 여인이 왕의 사신 이제현에게 남긴 시이다. 이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일까. 회산백련지에는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포토존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다리가 있다. 단 간절하게 빌어야만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무안회산백련지의 축제는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그러나 축제와 상관없이 인근 캠핑장에서 가족 또는 연인, 친구와 함께 묵으며 이른 새벽 연꽃 방죽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하루 정도 세상의 잡념을 벗어버리고 연잎과 백련 꽃의 그윽한 향기에 매료돼 무아지경에 빠져보길 추천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