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명승일 기자] 대전의 한 오피스텔에 한 달 이상 감금됐던 강유미씨가 두 번째로 감금된 대구 A교회 건물 모습. ⓒ천지일보 2018.8.7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대전의 한 오피스텔에 한 달 이상 감금됐던 강유미씨가 두 번째로 감금된 대구 A교회 건물 모습. ⓒ천지일보 2018.8.7

휴대폰·시계 뺏고, 화장실까지 감시

약 3주간 개종동의서 안 쓰고 버텨

목사·전도사·사모 합세해 개종 강요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지난 6월 24일 밤 11시쯤 가족에 의해 납치된 강유미(가명, 여, 37)씨는 다음 날 대전의 한 오피스텔에 감금된 뒤부터 가족과 지리한 실랑이를 벌였다. 납치 당시 휴대폰을 뺏긴 강씨는 외부와의 연락도 불가능했다. 그런 상태에서 강씨는 강제개종 교육을 받을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반면 가족은 강씨 의사와 상관없이 교육을 받으라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압박했다.

강씨가 감금된 장소는 완전히 고립된 곳이었다. 강씨 설명에 따르면, 오피스텔 베란다에서 밖을 보니,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사람 발자국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강씨는 주택가란 느낌보단 연구단지란 느낌이 더 강했다고 했다.

감금된 기간에 한 여성으로서의 인권은 철저하게 짓밟혔다. 우선 강씨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가족은 강씨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계속 지켜봤다.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화장실 문을 잠글 수 없었던 탓에 강씨가 화장실에서 몇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면 살짝 엿보기도 했다. 그가 반항할수록 ‘유도’를 전공한 B목사를 다시 부른다고 협박도 일삼았다. 날짜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달력도 없을 뿐더러 차고 있던 시계도 빼앗겼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강유미씨의 네 번째 감금 장소였던 경상북도 영천시 창녕길에 있는 한 시골 가옥의 모습 ⓒ천지일보 2018.8.7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강유미씨의 네 번째 감금 장소였던 경상북도 영천시 창녕길에 있는 한 시골 가옥의 모습. ⓒ천지일보 2018.8.7

감금된 지 3주째쯤 지났을 때였다. 가족이 강제개종 교육 동의서를 쓰자고 재촉했다. 가족은 “이걸 하지 않으면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고 협박했다. 이 동의서는 ‘제 스스로 교육을 받고 싶어서 받습니다’란 내용이 핵심이었다.

당시 강씨는 이 같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웠다고 울먹였다. 그는 “납치될 때 고함을 치고 했는데도 (경찰이) 어떻게 찾지 못할 수가 있죠”라며 “납치된 지 3주가 지났으면, 벌써 사람이 죽었을지 살았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못 찾을 수 있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사람 한 명이 사라져도 이렇게 세상이 잠잠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가요. 2~3주 동안 억울해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가족의 협박은 계속됐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분위기를 몰고 갔다. 강씨는 교육을 받는 방법밖에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강제개종 교육 동의서에 마지못해 서명했다. 하지만 ‘스스로 교육을 받는다’는 문항에 강압적이란 내용도 같이 적었다. 이에 동의서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강제개종 교육을 담당하는 목사와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강씨가 교육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던 것이다.

강씨는 강제개종 목사와 통화할 당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강제개종 목사는 “정말 (교육) 받기를 원할 때 전화주세요”라면서 강씨가 교육을 받을 의사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제개종 목사와는 두세 차례 이런 과정이 반복됐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야 7월 둘째 주쯤 교육이 시작됐다.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강유미씨의 네 번째 감금 장소였던 경상북도 영천시 창녕길에 있는 한 시골 가옥의 출입문에 피스를 박았다가 빼 놓은 자국(왼쪽 동그라미 안)이 보이고, 큰 창문 틀에 피스를 박아 놓은 모습이 보인다. 강씨 증언에 따르면, 강씨 아버지는 감금 장소를 옮길 때마다 출입문을 열 수 없도록 피스를 박아서 열쇠를 채웠다고 한다. ⓒ천지일보 2018.8.7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강유미씨의 네 번째 감금 장소였던 경상북도 영천시 창녕길에 있는 한 시골 가옥의 출입문에 피스를 박았다가 빼 놓은 자국(왼쪽 동그라미 안)이 보이고, 큰 창문 틀에 피스를 박아 놓은 모습이 보인다. 강씨 증언에 따르면, 강씨 아버지는 감금 장소를 옮길 때마다 출입문을 열 수 없도록 피스를 박아서 열쇠를 채웠다고 한다. ⓒ천지일보 2018.8.7

당시 남성 전도사 1명, 여성 3명이 신천지와 관련한 책자 20권을 캐리어에 담아 감금 장소를 찾았다. 이 중 여성인 대전 D교회 E사모를 통해 강씨는 하루 4시간 정도 교육을 받았다. 강제개종 교육은 신천지 교리가 잘못됐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첫날 교육을 받은 이후 이튿날 강씨는 사모에게 따졌다.

강씨는 “당신 소속이 어디냐”며 “왜 이렇게 사람을 감금해서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렇게 사모와 실랑이를 벌이고 난 후, 강씨는 4일 정도 밥을 먹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은 지 4일쯤 지났을 무렵 밥을 달라고 했지만, 가족이 음식을 모두 치웠다. 그렇게 5일 동안 강씨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더불어 강제개종 교육을 받으라는 가족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다 7월 26일 새벽쯤 강씨의 오빠는 “이젠 상담도 필요 없다”면서 “전라도 산골짜기 같은 곳에 가서 혼자 살아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강씨는 당장이라도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오빠는 “내가 10명의 청년을 풀어놨다”며 “네 발로 나가든지 네가 옮겨지든지 선택해라”고 요구했다. 엄마도 난생 처음 욕을 하며 “네가 이런데도 상담을 안 받을 것이냐”고 다그쳤다.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강유미씨의 네 번째 감금 장소였던 경상북도 영천시 창녕길에 있는 한 시골 가옥에서 강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7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강유미씨의 네 번째 감금 장소였던 경상북도 영천시 창녕길에 있는 한 시골 가옥에서 강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7

이 지점에서 강씨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강씨 설명에 따르면, 오빠가 감금 장소에서 3주쯤 머물렀다 울산의 사역하는 교회에 다시 내려가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강씨는 “정말 어이없었다. 경찰이 (강씨 가족을) 쫓고 있었다면, 오빠가 울산에 내려와서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그때는 납치된 지 3~4주 정도 된 가장 긴박한 시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의 압박 이후 강씨는 차량으로 장소를 이동해 경북 왜관의 굴다리 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차량을 다시 바꿔 탔다. 이후 차량으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대구 A교회의 반지하였다. 강씨는 “창문 하나 없는 반지하에서 공기도 너무 안 좋고 습해서 숨이 턱턱 막혀 잠시도 있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목사와 청년 2명이 와서 자물쇠로 문을 채웠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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