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유난히 무더운 올해 여름이다. 무더위가 언제 가실지 아침부터 또 다시 대지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때로는 청량감을 주던 매미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으니 아무래도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매미도 지쳐 잠시 쉬는가 보다. 더위가 정점을 항하고 시원하게 들리던 매미 울음소리가 시들해지는 시기에는 공원이나 도로 주변에서 무궁화가 활짝 꽃피기 시작한다. 동네를 지나다니면서 무궁화가 눈에 띄면 반가운 생각이 드는데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나라꽃 무궁화를 생각하다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상(連想) 끝에 가본 적이 있는 중국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떠오르게 됐다. 그것은 광복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한데, 몇 년 전 중국 충칭 여행길에서 들러본 임시정부 기념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다. 보고 난 후에 명맥만 잇는 것으로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바, 상하이 임시정부도 그렇고, 루쉰(魯迅)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윤봉길 기념관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이던 1919년 상하이에서 애국지사에 의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의 감시가 심해지자 임시정부는 항저우, 자싱, 난징 등을 거쳐 1940년 충칭으로 옮겨지게 됐다. 이곳에서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 활동을 계속했던 충칭 임시정부는 임정시절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활동을 평가받고 있는 곳이다. 사라질 위기에 처해지기도 했으나 1995년 8월 11일 정식으로 복원돼 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됐던 것이다. 

그날 임시정부 기념관을 들렀을 때가 오후 시간이라 기념관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지만 음료수 등을 파는 가게는 문을 닫았고, 기념관을 관리하는 중년의 중국인 남성은 폐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김구 선생 흉상과 사적 자료, 독립열사와 광복군의 사진과 유물 등을 관람하고 나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국내에서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마지막 자리했던 충칭기념관이 과거 중국에 있었던 임시청사 등 독립운동 사적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여서 잘 관리·운영되는 줄 알겠지만 현지 주변 환경이나 운영 상태를 보면 궁색함이 여실히 묻어난다.

알기로는 충칭 임시정부 기념관 관리는 중국인 한 사람이 하고 있다. 약간의 보수를 받으면서  관리에서 청소일까지 다하고 있지만 실상은 단순 경비와 같다. 또 한글을 몰라 한국인이 임시정부기념관을 관람 왔을 때도 의사소통이 안 되니 충칭으로 여행오거나 사업차 들른 한국인들이 애국심 또는 호기심 등으로 임시정부 사적지를 찾아도 김구 선생 흉상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한글로 게시된 설명문을 통해 임시정부의 역사를 알 뿐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런 실상은 상하이 임시청사나 루쉰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등이 모두 같다. 말로는 대한민국정부의 법통을 지키는 임시정부라 일컫고, 건국의 뿌리라 하고 있지만 현지에서 보면 초라하고 관리가 매우 허술한 상태다. 국민세금으로 엉뚱한 데는 잘도 쓰면서 국가 위상을 빛내고 국격을 지키는 일에는 등한시한다. 몇 안 되는 시설인 만큼 국가가 관리하면 될 일이다. 외교부나 현지 대사·영사관에서 직원을 한두명 파견해서 조직적·체계적으로 관리 운영하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임시정부의 얼을 기리고 독립열사들과 광복군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후세에 되새기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 아니던가. 

충칭 임시정부를 찾은 우리나라 최고지도자는 전두환·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2007년 10월, 중국인민외교학회 초청 길에 이곳에 들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5월 26일 방문해 독립열사들의 애국활동을 보고서는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선열들의 거룩한 뜻을 이어받아 자랑스러운 선진한국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라는 글을 본 한국 방문객들은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역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이곳을 찾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 2017.12.16.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방명록에 적은 바 있다. 대통령이 마지막 임시정부를 찾은 데는 큰 의미가 있는바, 무엇보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1919년 만들어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겠다는 점을 국내외에 알린 것이다.  

이틀 후가 광복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내년 건국 100주년 기념위원회를 설치하고 준비 중이지만 건국일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최근 유수 신문의 광고 난을 보면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경축합시다’는 글을 비롯해 ‘건국 70주년 기념식’ 광고가 있고, 방송에서도 70주년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같이 이번 광복절이 대한민국 건국 99주년이니, 70주년이니 이견이 분분한데, 그런 어정쩡한 현실 속에서도 나라꽃 무궁화는 활짝 피어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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