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이 일본에 약탈된 ‘경천사 10층 석탑’ 되찾은 사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0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이 일본에 약탈된 ‘경천사 10층 석탑’ 되찾은 사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0

헐버트 박사 서거 69주기

석탑 찾은 뒷이야기 공개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907년 3월 19일 헐버트 박사는 한 외국인과 함께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송도(개성)로 갔다. 도보로 남쪽으로 30여리 떨어진 풍덕으로 향했다. 걷는 도중 여기저기에서 수레바퀴 자국이 남아있었다. 사람만이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계곡을 따라 500여 미터를 올라가니 석탑이 있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석탑이 일본에게 약탈당했다는 소식은 사실이었다. 석탑이 있던 자리에 파괴된 석탑의 기반석만 남아있었다. 석탑 파편이 여기저기에 나뒹굴었다. 석탑 파편을 볼 때 전문가가 아닌 초보자들이 석탑을 성급하게 해체했음이 분명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중앙에 세워진 경천사 10층 석탑(국보 제86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천지일보 2018.8.10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중앙에 세워진 경천사 10층 석탑(국보 제86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천지일보 2018.8.10

◆기고문과 사진 통해 진실 알려

10일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헐버트 박사 서거 69주기를 맞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석탑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중앙 ‘역사의 길’ 안쪽에 서 있는 10층 석탑이다. 높이는 13m다. 국보 제86호인 석탑은 기단과 탑신에 조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석탑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인 1348년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원래 이 석탑은 북한 땅인 개성 부근 풍덕군(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扶蘇山)에 위치한 경천사라는 절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일본 궁내부대신 다나까 미스야키가 1907년 1월 황태자 순종의 결혼식 축하 사절로 한국에 와 무단으로 이 석탑을 해체했다. 석탑은 수레에 실어 개성역으로, 개성에서 철로로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로 일본으로 옮겨 다나까의 집 뒤뜰에 세웠다. 즉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약탈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석탑 약탈은 무책임한 한국인들의 짓이라며 소문을 부정해왔다. 하지만 헐버트가 일본 고베에서 발행하던 ‘재팬크로니클’지에 한국에서의 일본의 만행(Vandalism in Korea)이라는 기고문을 싣게 되자 일본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 기고문에는 헐버트가 석탑 약탈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모든 정황을 파악한 내용과 사진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자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도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나까는 석탑을 돌려주지 않았다.

헐버트의 재팬크로니클지 기고문(1907.4.4) (출처: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천지일보 2018.8.10
헐버트의 재팬크로니클지 기고문(1907.4.4) (출처: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천지일보 2018.8.10

◆ 만국평화회의 열리는 헤이그서도 폭로

헐버트는 모든 진상이 드러났음에도 일본이 석탑을 반환하지 않자 국제 여론에 호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서도 이 사실을 폭로했다. 만국평화회의를 보도하던 ‘만국평화회의보’가 헐버트의 주장을 보도하자 ‘뉴욕포스트’ 등 국제적인 신문들이 이를 받아 대서특필했다. 영국인 베델도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 7일자를 통해 처음으로 석탑 약탈을 보도하는 등 헐버트와 공조하며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에게 석탑 반환을 촉구했다. 석탑 탈취 사건이 국제적으로 보도돼 비난 여론이 세계 곳곳에서 들끓었다.

이에 당황한 일본 외교관들은 이런 일로 일본이 국제적 망신을 당해서는 안 된다며 본국에 석탑을 돌려줄 것을 건의했다. 서울의 통감부도 석탑 반환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은 1918년 석탑을 돌려줬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한국인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두 외국인인 헐버트와 베델의 필사적인 투쟁으로 이 사건이 국제문제로 비화해 결국 석탑이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하지만 돌아온 석탑은 조선총독부 창고에 방치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 석탑은 광복 후 1960년 경복궁에 복원됐다 1995년 해체 후 다시 정밀하게 복원해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과 함께 지금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김 회장은 “헐버트가 현장에 가서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경천사 10층 석탑은 아마도 우리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라며 “통일이 이뤄지면 헐버트가 희망한대로 석탑이 원래 있던 자리인 경천사에 원형대로 복원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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