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요즘 정치권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선거제도 개편이다. 물론 이런 화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유불리에 따라 수없이 오갔던 얘기이다. 그럼에도 각 정당의 유불리에 따라 수없이 무산됐던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현행 선거제도는 우리 정치권, 특히 거대 양당의 ‘정치적 특권’처럼 돼 버렸다.

해방 이후 한국에 미국식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든 권력은 ‘대통령 중심’으로 집중됐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력이 대통령한테 집중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대통령 권력을 정점으로 정당체제도 여야구도로 단순화 된 것이다. 정부수립 초기의 어수선했던 상황을 거치고 나서는 정당체제가 사실상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의 일대일 구도인 ‘양당체제’로 정착된 배경이라 하겠다.

양당체제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반독재 민주화 운동 국면에서는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반정부 투쟁전선을 단일화 시키면서 모든 민주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던 구심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으로 양분되는 구도는 정치권 특히 양당체제가 하나의 상징처럼 보였던 것도 이런 배경이다. 김영삼, 김대중을 하나로 묶었던 것도 민주세력을 압축했던 ‘거대 야당’이었다.

선거제도, 적대적 공생관계의 틀

중요한 것은 민주화 이후의 문제였다. 독재세력이 패퇴한 뒤에도 민주세력은 독재세력과 공생하는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그대로 안착시켜 나갔다. 이전까지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을 상징했던 정당체제가 민주화 이후에는 ‘영남세력’과 ‘호남세력’으로 압축되는 방식으로 재편된 것이다. 이를 학계에서는 정당체제의 ‘지역주의적 균열구조’라고 부른다. 지역 또는 지역주의가 대통령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 셈이다. 이전의 군사독재세력은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정당체제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제부터는 영남과 호남 간에 그들의 정당을 앞세운 채 이념과 정책 등 모든 이슈를 놓고 끝없는 공세와 비난, 음해 등이 난무하는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 심지어 ‘한국판’ 진보와 보수도 이렇게 세팅된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또 하나의 ‘비극의 탄생’이라 하겠다.
어처구니없게도 군사독재정권과 싸웠던 민주세력은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을 중심으로 다시 양당체제를 구축하며 그들의 ‘정치적 특권’을 유지 발전시켜 나갔다. 그 특권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였다. 그중에서도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핵심이다. 영남과 호남을 싹쓸이 할 수 있게 만든 소선거구제와 공천만 하면 최소 십수명은 당선이 보장되는 비례대표제는 영호남 지역주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제였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그 토대 위에서 당권을 확실하게 장악하며 이른바 ‘양김정치’의 전성시대를 누렸으며 그 연장에서 대통령 권력까지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주화 이후 김대중 정부가 끝난 뒤에도 선거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거대 양당체제는 지금도 그 때의 그 특권만큼은 그대로 독점하고 있다. 군사독재세력과 싸운 그들, 그 후에는 그들끼리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서 무한 정쟁을 반복하던 그들은 결국 ‘서로 싸우면서 닮아버린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딱 맞는 말이다. 기호 1번과 2번을 독점한 채 서로 주고받으며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를 무기로 여기에 ‘보수’와 ‘진보’라는 색깔까지 덧붙여서 ‘공생’해 온 것이다. 이처럼 적대적 공생관계로 한국정치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정치적 특권을 지켜주고 그들을 정치적 기득권 세력으로 존속케 하는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가 바로 현행 선거제도인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이 25.5%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체 의석은 123석으로 40%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에 국민의당은 정당득표율이 26.7%로 바른미래당보다 앞섰지만 의석수는 38석으로 전체 의석의 13%에도 미치지 못했다. 소선거구제도의 ‘마술’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선거제도가 합리적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다고 한다면 더 이상 ‘정당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특정 정당의 유불리가 아니다. 국민의 뜻이 공정하고 균형있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은 민주정치의 상식이다. 따라서 당리당략에 따라 선거제도를 농단하는 기득권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마침 여야가 모두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이번엔 바꿔야 한다는 여론에 호응하는 분위기이다. 그동안 완강했던 자유한국당이 전향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민주당도 적극 나서서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또 집권당으로서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을 것인가. 이번에도 미뤄져서 총선 직전까지 가면 될 일도 안 된다. 지금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농촌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도농복합선거구 중선거구제’도 좋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는 것이 옳다. 그래야 다양한 정당들이 국회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경쟁할 수 있으며 정당정치가 활성화 될 수 있다. 물론 의석수 증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여론이 좋지 않다면 ‘세비 동결’이나 ‘세비 감축’을 전제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헌정사 내내 이어져 왔던 거대 양당체제의 특권과 반칙이 이번 기회에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이 들더라도 암덩어리는 도려내야 한다. 이 또한 촛불혁명의 소중한 성과로 만들고 싶은 심정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