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해 가을 미국 프로 미식축구(NFL)에서 애국가 거부 움직임이 한창일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전 NFL선수 팻 틸먼을 애국심을 상징하는 스포츠인으로 추앙했다. 인종차별을 이유로 애국가를 부를 때 무릎을 꿇고 반대의사를 보인 일부 선수들이 군대를 경시한다며 지난 200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그를 진정한 애국자로 우러르게 된 것이다. 틸먼은 2002년 육군 레인저부대에 입대하기 전 애리조나 카디널스와 연봉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원)의 큰 돈벌이가 되는 계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01년 9.11 테러로 수천명의 미국인들이 희생을 당하며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게 되자, 운동선수를 포기하고 젊은이들이 가기를 꺼리는 특수부대에 자원, 아프가니스탄 전선으로 달려갔다. 애국의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 대신에 3년간의 군 입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불행히도 산악지역 정찰 도중 동료의 오인사격으로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틸먼은 1970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사망한 밥 칼서 이후 34년 만에 참전 중 사망한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기록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불거진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선발 논란을 보면서 지난해 애국가 제창을 둘러싸고 벌어진 NFL 갈등에서 ‘애국심의 상징’으로 떠오른 팻 틸먼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2009년 ‘사람들이 영광을 얻는 곳: 팻 틸먼의 오딧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삶에 대한 책을 쓴 존 크라쿠어는 “한 병사의 깊은 생각에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 그의 일기를 보고 얼마나 흥미롭고 복잡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며 그를 애국심의 상징으로 기억할 만하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월드컵 등 중요 국제대회에서 운동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국민들에게 국가관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내 국위 선양을 한 노력의 대가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고, 포상금도 받는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이 스포츠에서 세계 10대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푸짐한 포상제도에 힘입은 바 크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야구의 박찬호, 김병현이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고 미국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덕분에 박지성, 이천수, 안정환 등이 유럽 빅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의 병역특례제를 놓고 그동안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국위를 선양한 만큼 병역 특례를 주는 게 맞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병역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보상하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는 이들도 많았다. 지난 6월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24명의 아시안게임 출전선수 명단을 발표했는데, ‘병역 특례용 팀’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선 감독이 선발한 대표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갖추기보다는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위주로 됐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은 블로그나 SNS상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아시안게임 은메달 획득을 기원한다”는 비난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야구대표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가능성은 높다. 라이벌 일본이 사회인 야구선수를 주축으로 구성됐고, 대만도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 등으로 짜여져 한국보다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일부에서 한국야구 대표팀의 선발을 문제 삼은 것은 오지환(28, LG), 박해민(28, 삼성) 등 병역 미필자를 발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번에 선발되지 않았다면 현역병으로 군에 입대해야 할 처지였다.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도 일본 프로축구리그에서 활약 중인 황의조(26, 감바 오사카)를 선발한 게 병역특레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운동선수에게만 과도한 병역특례를 주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이라는 여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북한과 대치하는 일상적인 안보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스포츠를 포기한 미국 미식축구선수 팻 틸먼와 같은 스포츠 영웅얘기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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