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상트페테르부르크 4 – 네프스키 대로
[역사이야기] 상트페테르부르크 4 – 네프스키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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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1709년 6월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을 이긴 표트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표트르는 1710년 8월에 칙령을 내려 러시아 각지로부터 4720명의 장인(匠人)을 가족과 함께 데려와서 도시 건설에 투입시켰다. 

표트르는 공사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일하며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하여 여름궁전이 지어졌고, 광장, 운하, 도로 등이 건설돼 도시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졌다. 

1712년에 표트르는 러시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그는 모스크바에 있는 귀족과 상인들에게 이주를 촉구했다. 

네바 강 양쪽으로 화강암 깔리고
물 위엔 다리가 놓이고
강물에 떠 있는 섬들은
녹음 짙은 정원으로 뒤덮였다. 

- 푸슈킨 ‘청동기사(1833년)’

한편 표트르는 1711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동맥인 네프스키 대로 건설을 시작했는데 노브고로드로에서 해군성까지 잇는 네프스키 도로는 1713년에 준공됐다. 

171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5만 가구가 사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러시아 최초로 경찰이 존재하고 소방대도 있고, 주요 지역에는 조명도 밝혀 나름 유럽 근대 도시의 면모를 띠었다. 

이 젊은 도시의 기세에 옛 모스크바는 빛을 잃고 있었다. 

북국의 꽃이자 기적인 이 청년도시는
어두운 숲속에서, 물 고인 늪지에서
화려하게 당당하게 일어섰다.

한때… 핀란드의 어부가…
낡아빠진 어망을 던지던 곳,
지금은 생기를 되찾은 기슭에
으리으리한 궁전이며 탑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세계 곳곳에서 선박들이
이 풍요로운 항구를 향해 속속 모여든다.
젊디젊은 왕비를  마주한 홀로 된 대비(大妃)마냥
이 젊은 수도 앞에서
늙은 모스크바는 광채를 잃어버렸다. 

- 푸슈킨 ‘청동기사’

표트르는 해군성에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까지 4.5㎞의 2차 도로를 1713년부터 1718년까지 5년간 건설했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은 1240년에 네바 강 전투에서 스웨덴을 격파한 러시아의 국민영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의 이름을 딴 것인데, 표트르 1세는 1710년부터 1713년까지 네프스키가 스웨덴을 물리친 지점에 수도원을 세웠다. 

네프스키 대로도 영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에서 따왔다. 마치 서울의 충무로가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도로인 것처럼.   

18세기 중반 에카테리나 여제 시절 이후 네프스키 대로는 마치 진열장처럼 명품거리가 됐다. 대로에는 백화점과 호텔, 고급 상점·카페·레스토랑들과 극장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죄와 벌(1866년)’의 무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네프스키 대로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만남, 이것 하나 만으로도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828년에 관료가 되려는 꿈을 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온 우크라이나 출신 소설가 고골리(1809~1852)의 단편 ‘네프스키 대로’는 압권이다. 

‘네프스키대로만큼 멋진 곳은 없다. 적어도 페테르부르크에서는 그렇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빛이 발한다. 너무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고골리 단편의 주인공 피스카료프가 네프스키 대로에서 뒤따라간 천사 같은 미녀는 사창가로 들어가는 창녀였으니. 

네프스키 대로가 약간 비틀어진 것처럼 19세기 러시아는 부조리와 탐욕 그리고 허위가 판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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