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젊은 나이에 총리 후보가 되는 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더운 여름을 더욱 무덥게 했던 지난 8.8개각에 따른 김태호 총리 후보의 인사청문회와 사퇴관련 얘기다. 이를 두고 모 언론은 “‘차기 대권 주자’에서 ‘재기 불능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딱 3주였다”라는 표현으로 김 총리 후보자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사퇴를 결심한 김 총리 후보자는 곧바로 하향했다. 고향 거창과 인접한 합천 해인사의 고불암에 짐을 풀었다. 풀은 짐은 잠시나마 가졌던 명예와 권력욕의 짐일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 폄하해 버리고 말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삶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봄직한 우리의 얘기일 수도 있고, 또 앞으로 닥쳐올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선 교훈과 함께 남는 여운이 클 수도 있다. 그 교훈과 여운은 뭘까. 우리는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하며, 거짓이 아닌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한다. 위를 바라만 보고 올라가려고만 몸부림을 쳤을 뿐 그 역할에 맞는 준비를 하지 않았고, 인격을 닦지 않았다. 즉, 올라가 얻은 것을 누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인류의 변천사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궁극적인 삶은 두 문명의 조화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두 문명은 지금까지 조화 대신 충돌로 이어져 왔다. 이를 해결하고 조화롭게 하고자 성인들이 노력한 흔적은 너무나 많다.

그 중 유교가 있으며, 바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오상(五常)이다. 또 이 오상은 알고 보면 유교의 사상이기 이전에 모든 종교가 표현만 다를 뿐 한결같이 지향해온 덕목이며, 인간이 끝내 지녀야 할 가치관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민족은 역사 속에 이 같은 덕목의 중요성이 문화로 승화되어 잘 나타나 있으며 또 전해지고 있다.

조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하고 4개의 대문(大門)과 4개의 소문(小門)을 두었다. 이 4개의 대문은 유교에서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인 인의예지신을 따라 네 방향에 대문 하나씩 즉, 동쪽엔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엔 돈의문(敦義門) 남쪽엔 숭례문(崇禮門) 북쪽엔 숙정문(肅靖門)을 세우고 가운데는 보신각(普信閣)을 두어 도읍의 기본 틀을 갖췄다.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스런 인간의 상’을 상징화 해 왔으니, 예부터 선조들은 인간의 완성된 표상(表象)을 흠모해 왔던 민족이었음을 역사와 문화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북쪽으론 산새가 험하고 인적이 드물어 사실상 대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숙정문을 세워 오상의 덕목을 갈망하고 염원해 왔던 것이다.

금번 김 총리 후보내정자와 두 장관의 인사청문회 후 사퇴로 이어진 사건, 또 매번 개각 때마다 불거지는 비리의 온상은 바로 이 같은 우리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과 가치관의 몰락이 가져다 준 비극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것이다. 사라지고 왜곡되고 무너지고 잠자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깨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 곧 우리의 잠들었던 생각과 의식과 가치관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다.

우리는 예부터 성군(聖君)을 기다려 왔다. 그 성군이야말로 인의예지신의 오상의 완성으로 빚어진 ‘어질고 덕있는 임금’을 뜻한다. 우리 모두가 기다려왔던 성군인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