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대합실에 노인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8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대합실에 노인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8

공항으로 피서 나온 노인들

공항철도 무료 탑승 이용해

“VR체험관·홍보관 등 인기”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애들 장가, 시집보내고 혼자 있는 노인들이 집에 있으면 뭘 하겠어. 여기 나와서 사람 구경도 하고 더위도 식히는 거지….”

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만난 이성복(69, 남, 서울 구로구)씨는 보던 신문을 접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인들에게는 인천공항이 피서지나 마찬가지”라며 “여기 앉아 있는 노인들 대부분이 인천공항으로 피서 온 피서객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노인들 사이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이 ‘피서지’로 통하고 있다. 넓고 쾌적한 환경에 무엇보다 시원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무엇보다 더워서 숨이 막힐 정도지만 이곳에 나오면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공항철도에는 칸칸마다 앉아있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2~3명의 노인들은 제1여객터미널, 제2여객터미널을 안내하는 음성이 나오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있는 여행객들에 비해 이들의 짐은 가벼운 크로스백이 전부였다.

제2여객터미널에서 하차한 이분현(77, 여, 성남시 분당구)씨는 최근 들어 일주일에 네 번까지 인천공항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7시쯤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고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출발한다”며 “멀긴 하지만 그래도 공항철도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공항에 오면 집에 있는 것보다 재밌어서 자주오고 있다”고 말했다.

제2여객터미널 내 대합실의 장의자에는 앉아있는 시민 절반 이상이 노인이었다. 노인들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곳곳에 보였다.

노인들은 폭염 속 인천공항은 ‘천국’과도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의자에 앉아 수호지를 읽고 있던 김옥분(80, 여)씨는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나왔다”며 “너무 시원해서 한번 온 뒤로 남편과 올 여름 내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대합실에 한 노인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8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대합실에 한 노인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8

서울 목동에 거주하고 있는 안현자(가명, 60대, 여)씨는 “집에서는 전기세 걱정에 에어컨도 잘 못 트는데 이곳은 전기세 걱정 없이 시원함을 누릴 수 있지 않냐”라며 “무엇보다 공항엔 재밌는 것들이 많아 심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5층에 위치한 홍보관과 전망대에서는 항공기 이·착륙을 감상할 수 있고 VR 체험, 포토존 등을 즐길 수 있는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안씨는 “홍보관과 전망대에는 노인들이 더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 장충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유찬(69, 남)씨는 요즘 매일 이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는 더워서 앉아 있을 수도 없다”며 “대다수의 노인들이 더우니까 이곳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앉아있다 보면 우리를 불청객마냥 보는 시선을 느낀 적 있다”며 “동네 무더위 쉼터에는 사람들이 가득차서 앉을 데가 없다.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는 건데 불청객으로 비춰진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노인들의 공항 이용에 대해 기본 규칙을 지켜달라는 당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 LA에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방문한 서현숙(가명, 50대, 여)씨는 “인천공항이 시원해서 어르신들이 자주 오는 건 알고 있었다”면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는 건 좋지만 머물다 간 자리에 쓰레기는 꼭 치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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