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조선시대 서명, 같아도 같은 게 아냐”
[문화곳간] “조선시대 서명, 같아도 같은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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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곳간] “조선시대 서명, 같아도 같은 게 아냐” ⓒ천지일보 2018.8.8
[문화곳간] “조선시대 서명, 같아도 같은 게 아냐” ⓒ천지일보 2018.8.8

‘一心’ 글자에 기호 넣어 완성
문맹인 천인, 손가락 모양 그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사인(sign, 서명)이 익숙한 시대다. 문서에 도장을 찍기도 하지만 빠르고 편하기 위해 사인을 많이 한다. 보통 사인하면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사인이 있었다. 이를 수결(手決)이라고 했다.

◆관직있는 신분계층서 사용

수결은 관직에 있는 신분계층에서만 쓰던 부호였다. 수결은 ‘일심(一心)’ 두 글자를 썼다. 특이한 점은 보통 ‘一’ 자를 길게 그은 후 상하에 점이나 원 등의 기호를 더해 자신의 수결로 정했다. 각자 나름대로 독특하게 꾸며 사람마다 그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수결은 단순한 사인이 아니었다. ‘사안 결재에 있어서 오직 한마음으로 하늘에 맹세하고 조금의 사심도 갖지 아니하는 공심(公心)에 있을 뿐’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돼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문헌상 기록에는 수결을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했다. 서명(署名)·착명(着名)·착 압(着押)·수례(手例)·수결·화압(花押) 등이 문헌 기록에 전해지고 있다.

임금은 ‘어압(御押)’으로 불리는 수결을 사용했다. 왕이 등극하면 의정부 당상, 육조 참판 이상, 홍문관과 예문관의 당상관들이 모여서 국왕의 어압을 의논해 정했다. 효종은 정(正) 자, 현종은 입(立)자, 숙종은 수(守)자로 어압을 만들었다고 한다.

천인이라고 해도 글을 읽고 쓸 줄 알면 수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움의 기회가 적어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수결을 할 수 없었기에 이를 대신해 다른 방법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수촌(手寸)’이었다. 이는 손가락을 문서에 대고 그리는 서명 방식이다. 사람마다 손가락의 두께와 마디 길이 등이 달라 이를 활용했다. 조선 전기에는 손가락의 실제 크기와 동일하게 그렸지만 후기에는 모양만 대강 흉내 냈다. ‘수장(手掌)’도 있다. 이는 손바닥을 문서에 대고 그리는 서명 방식으로 여성이 많이 썼다.

◆이항복 선생의 독특한 수결

수결과 관련해서는 오성부원군 이항복 선생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항복 선생은 평소에 처리할 문서가 너무 많아 번거로움을 줄이려고 수결을 할 때 ‘일(一)’자 하나만 썼다. 어느날 한 재상이 “이 문서에 수결 한 사람이 이항복 대감이 맞소?”하고 물어왔다. 수결을 보던 이항복 선생은 “내가 수결 한 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하지만 재상이 보기에는 완벽한 이항복 선생의 수결이었다. 그래서 “평소 이 대감이 수결하던 글자 모양과 같지 않소”하고 되물었다. 이에 이항복 선생은 “내가 평소에 ‘일(一)’자 수결을 하긴 하지만, 이것은 내 수결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재상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항복 선생은 다른 문서를 가지고 와서 진짜 수결을 보여줬다. 그러나 재상은 두 수결을 봐도 도무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해하던 이항복 선생은 “내 수결은 ‘일(一)’자 양 옆에 바늘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소”라며 차이점을 알려줬다고 한다. 이후 이항복 선생은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수결을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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