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제35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설정스님(오른쪽)이 전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악수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7.10.12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제35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설정스님(오른쪽)이 전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악수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7.10.12

인사·예산집행 등 권한 독점
정부, 국무총리 준하는 예우
기득권-개혁파 이해득실 공방

[천지일보=박준성·이지솔 기자] 대한불교조계종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계종을 이끄는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은처자, 개인재산, 학력위조 등 개인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을 앞두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총무원장이 소임을 맡은 지 9개월여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초유의 사태를 맞은 조계종은 내부적으로 큰 혼란을 겪는 등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향후 종단 정치에 미치는 충격과 후폭풍은 가늠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단 내에서도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반대하는 집회와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6일 조계종 교권자주혁신위원장 밀운스님은 “총무원장이 여론 재판에 밀려 퇴진한다면 종단 교권이 무너진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하지만 설정스님의 용퇴 의사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종단 수장이 물러나면, 법 절차에 따라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하면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장선거는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로, 선거 자체가 정치적 이해타산과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다.

겉으론 수백만의 불자들을 이끄는 종단 대표인 총무원장은 사부대중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소수의 특정 선거인단(321명)의 표심에 따라 결정된다.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단은 어떻게 구성하나. 국회의원 격인 중앙종회 의원 81명과 조계종 24개 교구본사의 교구종회에서 10명씩 선출한 240명 등 총 321명으로 구성된다. 중앙종회와 각 교구종회 스님들은 일반 수행승(이판)이 아닌 조계종단(또는 교구)의 주요 현안을 다루고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승려(사판)들인 것이다.

종단 정치의 핵심인 중앙종회는 종책(종단 정책)을 논의하는 계파모임이 있다. 이 종책모임은 종회의원 스님의 머릿수에 따라 종단 정치를 좌지우지할 권한이 커진다. 조계종 내에서 몇몇 계파가 힘을 모으면 총무원장 선출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불교광장’이라는 거대 계파의 지지기반을 둔 설정스님은 지난해 10월 총무원장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제35대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그 이전 자승스님도 불교광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33·34대 총무원장 연임에 성공하기도 했다.

역대 총무원장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한 종책모임 계파를 중심으로 집행부를 구성해 왔다. 신임 총무원장이 종단 화합 차원에서 대탕평 인사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총무원장 측근 인사들로 집행부가 꾸려지다보니 종단 사유화, 적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으로 더 들여다보면 한국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총무원장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다. 심지어 불교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계종 종헌에서 보장하는 총무원장의 역할과 권한은 어떠할까. 종헌 54조 1항에는 ‘총무원장은 본종을 대표하고 종무행정을 통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히 ‘행정 수반’ 역할만을 하는 것으로 보면 착각이다.

전국 사찰 3100여곳에 대한 주지 임명권과 스님 1만 3000여명의 인사권, 예산 집행권 등 그 권한은 막강하다. 세분화해서 보면 ▲종헌·종법 제·개정안 제출권 ▲종령 제정권 ▲총무원 임직원 및 각 사찰 주지 임면권 ▲종단소속 사찰의 재산 감독권 및 처분 승인권 ▲특별 분담 사찰 및 직영 사찰 등 중요 사찰의 예산 승인권 및 예산 조정권 ▲특별 분담 사찰 및 직영 사찰 지정권 ▲징계의 사면·경감·부권 및 포상 품신권 등이다. 총무원장은 인사·재정·상벌 등 대부분의 권한을 갖는 최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대외적인 위상도 높다. 불교 29개 종단(종파) 협의체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도 조계종 총무원장이 맡고 있다. 7대 종단 논의기구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등 상임대표도 돌아가며 활동한다.

정부 또한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7대 종단 수장들은 국무총리의 준하는 예를 하도록 법률적으로 정해 두었다. 청와대 오찬 모임도 자주 들린다. 대통령이 국정 현안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자리다. 선거 때마다 정치 인사들이 불자들의 표심을 사기 위해 총무원장을 찾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불교계 관계자는 “종단 내적으로는 인사권, 감사권을 비롯한 조계종 재산 관리의 관한 대부분의 권한을 갖고 있다”며 “그만큼 절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총무원장직에 집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교대통령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모든 권한의 정점이 총무원장에 있으니 결정적인 순간에 총무원장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며 “공적으로 이뤄져야 할 (종단운영) 시스템이 사유화되는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총무원장 권한을 분배하기 위해서라도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계종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 궐위 시 60일 내 선거를 치러야 한다. 새 총무원장 선출 때까지 권한대행은 총무부장이 맡게 된다. 총무원장선거를 치를 때마다 투표권을 가진 소수 인사들(321명)의 표심을 얻고자 금권선거, 네거티브 선거 등으로 홍역을 치른다.

전국선원수좌회 등은 현 선거제도인 간선제로 총무원장 선거를 치를 경우 기득권 세력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개혁 세력들은 오는 23일 초법적인 전국승려대회를 열어 참정권 확대를 꾀한다. 비구니, 재가불자 등의 권한 확대를 통해 투명한 총무원장 선출이란 종단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차기 총무원장 선출과 종단 개혁 등의 문제를 기존처럼 종회 중심으로 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승려대회는 초법적인 발상이라며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승려대회를 앞두고 대립각을 세운 양측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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