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1개월 전인 2008년 7월 11일 새벽, 금강산에서 몇 방의 총성과 함께 박왕자 여사가 희생됐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길은 막혀 있다. 여기에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조치와 북한의 핵개발 가속화로 금강산 관광길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없이 그렇게 10년 세월을 흘러 여기까지 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당일인 3일 북한이 현대 일가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인연을 부각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정부에 조속한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를 촉구하는 한편,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서 현대그룹이 과거와 같은 주도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남조선 현대 일가가 받아 안은 영광’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매체는 “남조선의 전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2000년 6.15 공동 선언 직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매체는 “평양을 방문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몽헌 회장을 만나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안광에는 시종 따뜻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건강 상태며 기업 형편을 하나하나 료해(파악)하시고 개성공업지구건설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한 경제협력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도 모두 풀어주시고 나서 정주영 일행에게 참으로 뜻 깊은 교시를 하시었다”고 전했다.  

매체는 또 “무릇 사람들에게 있어서 첫사랑이라고 하면 일생토록 잊히지 않는 아름답고 고상하고 귀중한 것으로 일러왔다”며 “헌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대와의 관계를 첫사랑이라고 불러주시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현 회장의 이날 방북은 3년 만이다. 현 회장은 남편인 정몽헌 전 회장 사망 후 매년 금강산에서 추모식을 열었지만,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2016년부터는 방북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북한 매체가 금강산 관광 사업권을 가진 현대그룹과의 인연을 강조한 배경을 놓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최근 노동신문 등을 통해 우리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대북 제재를 지속하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 사업에 속도를 낼 것을 촉구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3일 “올해 안으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을까 전망한다”며 “북측에서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이날 금강산에서 열린 정몽헌 전 회장 15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뒤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와 금강산 관광 재개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현 회장은 이번 방북과 관련 “오늘 정몽헌 회장님 15주기를 맞아 금강산에서 추모식을 하고 돌아왔다”며 “북측에서는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20여명이 참석했고, 현대는 현지 직원을 포함해 30여명이 참석해 3년 만에 현대와 아태가 공동으로 추모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모식은 헌화, 묵념 후 현대와 북측이 각각 추모사를 낭독하는 순으로 진행됐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추모행사를 잘 진행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아태 측은 전했다”고 밝혔다. 또한 “‘아태는 현대에 대한 믿음에 변함이 없고 현대가 앞장서 남북 사이의 사업을 주도하면 아태는 언제나 현대와 함께할 것’이라는 김영철 아태위원장의 말도 전했다”고 덧붙였다. 현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돌아가신 지 15년이 됐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현대는 지난 10년과 같이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며 담담하게 우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남과 북이 합심해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 우리 현대그룹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현 회장은 방북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랜만에 금강산에 가게 돼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고 그동안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남북경협 관련해서는 “오늘은 추모식 자리라서 구체적인 사업 얘기는 하지 않았다”며 “‘평양에 언제든 오라’는 김영철 아태평화위원장의 말씀을 맹경일 부위원장이 전해줬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지 시설에 대해서는 “지금 남북적십자회담(이산가족상봉행사) 때문에 많이 개보수하고 있는데 낙후된 것들이 좀 있어서 금강산 관광을 하려면 보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남북관계 발전의 선구자이다. 경제교류협력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금강산 관광을 곧 북한에 대한 캐시유입으로 등식화 할 필요는 없다. 관광대가를 쌀이나 기타 물자로 제공하는 일도 협상을 통해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정주영 회장의 “니들이 해 봤어?”란 말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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