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미공개 문건 410개 문서 파일 중 사법부 전산망에 공개하지 않았던 미공개 문건228건을 31일 오후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미공개 문건 410개 문서 파일 중 사법부 전산망에 공개하지 않았던 미공개 문건228건을 31일 오후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천지일보 2018.7.31

외교수석에 해외법관 파견 청탁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수단 삼아

검찰, 객관적 물증 확보 방안 고심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해외파견을 늘리기 위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외교부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정황을 속속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을 정부 입맛에 맞게 미루기 위해 실제로 재판에 개입한 과정을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지난 2일 외교부 압수수색에서 임종헌 전 차장이 2013년 10월 말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과 강제징용 소송의 진행 상황과 향후 방향을 설명한 내용의 면담 기록을 확보했다.

이 기록에는 임 전 차장이 주 전 수석에게 주유엔 대표부에 법관을 파견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탁한 정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2010년 끊긴 해외 법관파견을 재개하려 공을 들였다. 2013년 2월 네덜란드 대사관을 시작으로 다음해 6월부터는 주유엔 대표부에도 ‘사법협력관’이라는 이름으로 판사 보내기에 성공했다.

법원행정처는 임 전 차장이 주 전 수석을 만나기 한 달 전인 2013년 9월 “청와대 인사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며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 등이 포함된 인사위 명단을 추린 문건도 만들었다.

임 전 차장은 2015년 6월 당시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징용소송에 관한) 의견서 제출을 협의했다”면서 대사관 법관파견을 청탁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법원행정처는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판사를 파견 보냈으나 2010년 파견이 끊긴 뒤 재개하지 못한 상태였다. 실제로 외교부는 이듬해 11월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법관 해외파견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을 이용해 전방위 청탁을 하는 한편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번 수사의 핵심은 소송에 대한 청와대와 외교부의 입장이 사법행정 라인에서 담당 재판부로 어떻게 전달됐고 의사결정에 누가 관여했는지 여부가 됐다. 검찰은 전·현직 대법관들에게서 ‘자백’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객관적 물증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검찰은 징용소송의 검토·처리 과정의 추적을 위해 재판연구관들 PC의 하드디스크 등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해달라고 법원행정처에 요청했지만 받지 못하고 있다.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대법관의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강한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를 지워 복구가 안 되게 만드는 기술) 방식으로 손상돼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검찰에게 사건 배당이 지연되는 등 처리 과정에 의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이 지금까지 수집한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재판 관련 기록을 입수하기 위한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법원은 이미 지난 1일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과 의혹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대한민국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례적인 사유를 들어 기각을 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법원이 ‘재판거래’가 없었다는 판단 하에 강제수사 차단에 나섰다고 보는 관측이 나온다.

이로 인해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문제가 되는 재판에 한해 재판연구관들이 어떤 문건을 작성했고 대법관들이 수정하거나 지침을 내렸는지, 법원행정처 문건이 전달되거나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판연구관 자료를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