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5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잊은 채 책을 읽고 있다. ⓒ천지일보 2018.8.5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5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잊은 채 책을 읽고 있다. ⓒ천지일보 2018.8.5

최근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밥족, 혼술족에 이어 ‘라운징족’이 등장했다. 라운징족은 극장이나 카페, 공원 등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편히 쉰다는 의미의 ‘lounging’에서 만들어졌다. 본지는 라운징족이 어떻게 여가를 보내는지 카페와 영화관, 대형 서점을 찾아 만나봤다

“나만 혼자 아니구나” 위안

전문가 “개인주의 확산 우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혼자서 왔어요. 영화관을 오는 데 꼭 누군가와 함께 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전 혼자가 더 편하고 좋아요. 영화에 더 집중할 수도 있고요.”

최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중구 한 영화관에서 만난 이홍경(23, 남)씨는 ‘누구와 영화관에 왔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영화관 VIP등급인 이씨는 “친구랑 영화를 같이 보러 오면 중간 중간 대화하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다”면서 “혼자 영화를 보면 편하게 볼 수 있고, 또 친구와 상의하지 않아도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씨를 포함해 이날 만난 라운징족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때론 군중 속에서 안정감을 찾거나 ‘나만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 모습도 보였다. 이와 관련해 “개인주의가 확산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나왔다.

기자가 찾은 영화관에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온 고등학생들, 휴가를 맞아 가족끼리 온 관객들도 보였지만 이씨와 같이 혼자서 영화관을 찾은 라운징족도 만날 수 있었다.

휴가 중이라는 임태훈(31, 남)씨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며 “집 밖으로는 나오고 싶은데 어디 가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영화를 보러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처음에는 혼자 영화관에 오는 게 많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며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영화관으로 나오면, 나처럼 혼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라운징족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형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서점의 1인 테이블과 의자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리했다. 3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도 역시 책 읽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이들 중 지인과 함께 온 사람은 10명 남짓, 나머지는 모두 혼자서 서점을 찾은 라운징족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혼자 서점에 방문한다는 최은정(43, 여)씨는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해 집에서 읽어도 되지만 일부러 서점으로 나와서 읽는다”며 “집에만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서점에 나와 여러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안정감이 든다”고 말했다.

회사 점심시간에 나온 강은진(가명, 33, 여)씨는 “회사 사람들의 눈 피해 잠시 쉬러 서점에 온다”며 “회사 내부에서는 점심 먹고 잠시 쉰다고 해도 눈치를 봐야하는데 서점에 오면 조금 편하게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5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한 시민이 서서 책을 읽고 있다. ⓒ천지일보 2018.8.5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전국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5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한 시민이 서서 책을 읽고 있다. ⓒ천지일보 2018.8.5

이어 “혼자서 왔지만 서점이 넓다 보니까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휴식을 취하는 사람인 라운징족이 증가하는 현상과 관련해 개인주의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왔다.

오상빈 심리치료사는 라운징족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편해지려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려지고 있는 것”이라며 “가족에서부터 소통하고 토론하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귀옥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는 “최근 가족을 부양하기 힘든 사회가 되면서 1인 가구가 많이 늘고 있다”면서 “1인 가구가 늘면서 라운징족도 증가하고, 개인주의가 확산해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은 언제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며 “개인주의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과 건강한 개인이 함께 조율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