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자두만한 크기의 배. ⓒ천지일보 2018.8.2
[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작은 크기의 배. ⓒ천지일보 2018.8.2

나주배, 냉해에 이어 가뭄에 폭염까지… 3타 자연 피해로 ‘끙끙’

‘가축을 살려라’ 오후1시∼4시 골든타임… 1도 낮추기 안간힘

[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지난 7월 10일부터 22일째 전남 나주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전국 최대 가축 사육지이자 전남 최대 농업지역인 나주에 연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행정당국과 지자체의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낮 최고 기온 38.6℃를 보인 1일 오후 전남 나주시 왕곡면에서 배농사를 짓고 있는 유정자(가명, 50대)씨를 만났다. 그는 “지금 심정은 한마디로 ‘죽고 싶다’”며 “지난 4월 냉해에 이어 지속적인 가뭄, 그리고 폭염까지 덮쳐 올해 배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그의 농장과 주변 농장은 자두만한 크기의 배가 군데군데 몇 알씩 매달려 있었고 종이로 싼 배는 사과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수풀이 우거진 농장내부는 농사를 포기한 흔적이 역력했다.

유씨는 “비료값 등으로 대출받은 돈이 벌써 4000만원이 넘게 들어갔는데 보통 배를 수확해서 1억 5000만원은 나와야 임차료도 주고 내년 배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20년 넘게 배농사를 지었지만 올해 같은 해는 처음이다. 가뭄으로 물량이 적어 관수시설도 한계가 있다.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냉해 피해 보상이 전부”라고 울먹였다.

전남 나주시 최근 한 오리농가에 오리가 폭염에 집단폐사한 모습. (제공: 나주축협)
전남 나주시 최근 한 오리농가에 오리가 폭염에 집단폐사한 모습. (제공: 나주축협)

가축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이날 오후 4시 나주시 공산면 나주시양계시범단지내 축사 온도계는 35.5℃를 가리켰다. 양계장 앞에는 최신시설인 대형 공기 냉각기가 물을 뿌려 주고 있었고 양계장내에는 대형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설도 폭염엔 속수무책이라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30년째 닭을 키우고 있는 박종희(가명, 50대)씨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1도라도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일단 불을 끄고 닭모이를 주지 않는다”며 “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닭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은 20분만 대형 환풍기를 멈추면 바로 닭이 죽는다. 적정온도 23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그나마 우리집은 오늘만 300마리 정도 폐사했는데 아마 이 사업단지에서 가장 작은 숫자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농가나 시설이 미비한 농가는 키우던 2만 마리 전체가 며칠 전 폐사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앞서 지난 31일 자료에 따르면 나주시는 총 96농가가 총14만 6887마리가 폐사한 가운데 닭은 43농가에 12만 3380마리, 오리 22농가 2370마리, 돼지 28농가 434마리, 소 3농가 3마리가 각각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축사 취재에 동행했던 김규동 나주축협조합장은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최대한 막을 수 있는 것은 막고, 미리 지하수도 더 개발하고 해서 냉각해 주위에 뿌리고 하는 등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대비해야할 것 같다”며 현 상황을 심각히 우려했다.

이를 위해 그는 최근 “한우농가의 경우 한우가 보통은 폐사하지 않지만 이번엔 더위가 너무 심해서 긴급 예산을 투입해 비타민·영양제 약제 7톤을 긴급 구입해 농가에 무상보급하고 있다”며 “정부, 행정, 시민 모두가 협력해서 폭염을 잘 이겨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나주시 공산면의 한 율무밭. ⓒ천지일보 2018.8.2
[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나주시 공산면의 한 율무밭. ⓒ천지일보 2018.8.2

농작물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율무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남(가명, 70대)씨는 “이웃집 오리도 집단 폐사하고 가축도 피해가 크지만 농작물은 더욱 심각한 상태”라며 “고추농사는 물론이고 관내 인삼, 율무도 다 말라 비틀어졌다. 물을 24시간 대고 있지만 당장 비가 오지 않으면 올해 농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폭염 피해가 속출하자 나주시나 전남도, 해당국은 피해복구비(예산) 등을 투입해 ▲대형 선풍기와 ▲스프링쿨러(자동급수장치) 비치 ▲열차단 페인트 지원 ▲비상급수 등 다양한 폭염 피해 대책을 내놓고 있다.

또한 앞서 나주시는 지난 6월부터 안전총괄과장을 중심으로 ‘폭염 대비 대응 TF팀’을 구성하고, 폭염대비 가축관리대책을 시달하는 등 폭염상황관리반과 함께 폭염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건광관리지원반, 농·축산지원반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만난 농민들 대부분은 이같은 행정의 관심과 노력, 대책이 ‘문제 발생 후 대책’ ‘주민들이 체감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으로 행정당국에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나주시 공산면의 한 고추밭. ⓒ천지일보 2018.8.2
[천지일보 나주=이영지 기자] 나주시 공산면의 한 고추밭. ⓒ천지일보 2018.8.2

실제로 이 같은 나주 배 피해 상황을 묻자 나주시 관계자는 “읍면동에서 피해사례가 특별하게 올라온 것이 없는 데 최근 폭염 피해 사례가 접수된 것이 없다. 올라 온 게 있으면 현장에 나가서 조사를 했을 것”이라며 “과수농가에 대해서는 보통 관수시설보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나주시 안전총괄과장은 “2017년도에는 피해가 100농가 11만 3000마리였는데 현재는 100농가에 16만 1000마리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고 농가 재해보험 가입률의 경우 닭이 58%, 오리가 60%, 돼지는 73%정도 가입돼 있는 상태”라며 “인삼과 고추 등은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파악됐지만 농작물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현황조사는 현재는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후 된 시설에 대해서는 1억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안개분무, 차광막, 대형선풍기(휀) 등을, 농작물에 대해서는 약 2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스프링쿨러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은 앞으로 폭염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며 시설보강 및 재해보험가입 독려와 함께 “폭염이 이제 일상화 될 텐데 우리 모든 생활이 폭염과 연관되기에 행정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축산, 인명 피해에 집중했는데 농작물 피해 상황도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행정과 함께 시민들도 폭염지침행동, 논·밭·축사 관리 등 대비에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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