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망국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산하를 물들일 때 고려의 신진사대부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했다. 무능하고 타락한 국왕과 그를 에워싼 친원파의 국정농단, 그리고 도탄에 빠진 민생의 피눈물이 곳곳에서 쏟아질 때 고려는 더 이상 백성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길은 쉬 보이지 않았다. 망국의 고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려 말 당대 최고의 수재였던 포은 정몽주가 23세의 나이로 문과에 장원급제했다(1360년: 공민왕 9년). 이때만 하더라도 공민왕은 비록 제한적이긴 했지만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정동행성이 폐지되고 기황후를 업은 기철 등의 친원파를 제거한 것도 불과 4년 전의 일이었다. 이런 즈음에 정몽주의 등장으로 도성은 떠들썩했으며 신진사대부의 개혁정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원명 교체기까지 겹치면서 고려는 마지막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됐다.

정도전, 마침내 혁명의 시대를 열다

정도전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자 고향 영주로 내려가 삭망전(朔望奠)을 지내고 있었다. 이즈음 정몽주로부터 ‘맹자(孟子)’ 한 부를 받게 된다. 개국을 향한 꿈이 사상적으로 확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당시 빛을 다한 고려 불교 대신에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적 사상에 조금씩 침잠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맹자’의 가르침은 그들에게도 혁명적인 것이었다. 정도전이 상(喪) 중에도 하루 반 쪽 또는 한 쪽을 읽어 나갔던 이유일 것이다.

상(商)나라 탕왕, 주(周)나라 무왕이 주군을 죽이고 새 나라를 열었는데 이처럼 신하들이 임금을 죽여도 되는가라고 묻는 제(齊) 선왕(宣王)에 대해 맹자는 “그들이 일개 필부(一夫)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맹자, 양혜왕 편). 인(仁)과 의(義)를 잃은 ‘도둑놈들(殘賊)’을 주살(誅殺)한 것이지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역성혁명’의 역사적 논거와 사상적 배경을 명확히 제시한 내용이다. ‘맹자’를 읽는 정도전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민왕의 초기 개혁정치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회생의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기득권세력의 탐욕은 그치질 않았고 백성의 탄식은 하늘을 찔렀다. 그 어떤 개혁정책도 무용지물이었다. 또 그럴수록 백성들의 고통만 가중됐다. 결국 정도전이 이성계와 손을 잡고 고려의 ‘창조적 파괴’, 즉 ‘조선 건국’의 길을 택하게 된다. 조선의 건국은 통치이념부터 사상과 철학 그리고 주도세력을 전면 교체한 말 그대로의 무혈 역성혁명이었다. 그리고 한양(漢陽)으로의 천도는 그 상징적인 메시지였던 셈이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그 치열했던 고민과 투쟁의 산물이라 하겠다.

국가의 몰락에는 망국의 지도자와 함께 그 어떤 개혁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당의 몰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망당(亡黨)의 지도자와 함께 강고한 기득권세력의 저항은 생각보다 거칠고 집요할 수밖에 없다. 자칫 정치 생명까지 빼앗길 수 있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순순히 물러날 기득권 세력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궤변과 음해 등으로 ‘개혁의 길’을 좌초시키려 할 것이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모습을 보면 고려 말 그 혼란스러웠던 정국의 파편들이 잘 묻어나고 있다. 김병준 혁신비대위 체제가 비교적 중심을 잡아 가고는 있지만 이는 응급조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직 제대로 된 개혁정책, 특히 인적쇄신 문제는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인다. 물론 아직은 초기인 만큼 내부적으로 준비되고 있을 것으로 보지만 자칫 이대로 시간만 보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고려 말의 상황이 그랬듯이 자유한국당도 큰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의 당 체제를 지키면서 보완하고 개선해 갈 것인가, 아니면 조선의 건국처럼 완전히 새로운 ‘창업의 길’로 갈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부터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연 보완하고 수리해서 다시 쓸 수 있는 시스템인지 또 그렇게 하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인지부터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눈높이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자유한국당이 ‘사실상 궤멸적인 상태’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정도전의 고뇌와 결단이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완전하게’ 바꾸지 않으면 백성들과 신진세력들의 고통만 더 길어질 뿐이다. 완전하게 바뀐 조선에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마음껏 그들의 재능을 발휘했다.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조선왕조 500년의 힘은 그렇게 창출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낡은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서막이 됐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혁명’에 나섰던 것은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곳에서 고려 왕조를 지켜낼 명분도 동력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대외정세는 급변하고 있는데도 기득권 세력들의 인식은 구태의연했으며 백성들의 삶은 눈뜨고 볼 수 없는데도 그들의 탐욕은 그칠 줄 몰랐다. 그 절망의 현실에서 마치 ‘운명’처럼 ‘펜과 칼’, ‘조직과 비전’이 만난 것이다. 바라건대 김병준과 김성태의 만남도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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