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동물

이산하(1960~ )

 유럽 여행 때 한 실내 동물원을 구경했다.
 방문마다 사슴, 늑대, 악어 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방문에 새겨진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었다.
 호기심에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정면 벽에
 커다란 거울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내 얼굴이 비춰졌다.

 

[시평]

인간이 이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그 인간들은 자신이 이 지상의 가장 위험한 동물인 줄을 간혹 잊어버리고 산다. 아니 잊어버렸다기보다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나 실은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 아니다.

동학을 창명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은 인간을 가리켜 ‘만물 중 가장 신령(神靈)한 존재(獨惟人 最靈者)’라고 말했다. 이때의 ‘신령’하다는 의미는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존귀함’은 말 그대로 모든 존재로부터 떠받듦을 받고 그 존재 위에 군림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령함’은 신령하므로 자신 하나만 떠받듦을 받고, 자신 하나만 살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령하기 때문에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사는 것이 바로 잘 사는 길이라는 그 사실을, 깊이 터득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직 인간들이 자신이 지닌 이 신령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지닌 신령성을 깨달을 수 있을 때, 그러므로 자신에게 잠재된 그 신령성으로 인해 자신만 혼자 살고자 하는 것이 궁극에는 모두를 파멸로 몰아간다는 그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을 때, 다른 존재와 함께 사는 지혜를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인간이 저지른 오점을 스스로 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 아니라, 가장 현명한 동물이 될 것이다. 자신의 지혜를 지혜로 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쓰므로 오늘의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는 가장 우둔한 동물, 이가 오늘의 인간이다. ‘신령함’을 올바르게 터득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지닌 인간, 그래서 이 신령함을 진정 터득할 수 있는 그날이 머잖아 올 것으로, 그리하여 더불어 사는 삶이 올 것을 확신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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