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24일 전남 순천시 조례동의 순천 드라마촬영장에 위치한 70년대 서울 봉천동 달동네 마을.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지난 24일 전남 순천시 조례동의 순천 드라마촬영장에 위치한 70년대 서울 봉천동 달동네 마을. ⓒ천지일보 2018.7.31

  순천 드라마촬영장            

70년대 서울 봉천동 달동네 재현
교복체험 등 추억과 교훈의 장
영화·드라마 47여 편 촬영 돼
도심 속에 있어 시민 쉽게 왕래
젊은 층 ‘가야 할 곳’으로 인기

[천지일보 순천=김미정 기자] 따가운 햇볕이 살을 파고드는 여름. 

대부분의 사람이 휴가지로 계곡이나 바다를 찾지만 도심 속에서 힐링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접근성이 좋아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곳은 바로 순천 드라마촬영장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고교 동창생들이, 경북 성주에서 여고생들이, 충청도에서 온 학생들이 각각 내일로, 버스, KTX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 이들이 드라마촬영장을 찾는 이유는 뭘까. 

기자는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24일 순천 드라마촬영장을 찾았다. 더위 탓에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전국 곳곳 남녀노소 불문하고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드라마촬영장을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추억의 음악 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지난 2005년 건립됐다. 이전에는 군부대였다. 당시 순천시에 인구가 늘면서 군부대 인근까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에 군부대가 별량으로 옮겨지고, 시는 1만 2000여평에 달하는 부지를 사들여 드라마촬영장을 조성했다. ‘사랑과 야망’의 드라마촬영장이 이렇게 들어섰다. 드라마 배경이 순천 읍내이다 보니 세트장이 필요했고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취지 아래 약 63억원을 들여 60년대 읍내거리, 70년대 달동네, 80년대 서울 변두리를 조성했다. 

이후 ‘서울 1945’ ‘님은 먼 곳에’ ‘에덴의 동쪽’ ‘제빵왕 김탁구’ ‘자이언트’ ‘복희누나’ ‘빛과 그림자’ ‘늑대소년’ ‘피 끓는 청춘’ ‘허삼관’ ’ ‘헤어화’ 등 47여 편의 작품이 촬영됐고 지금도 섭외된 작품들이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세 개의 시대별로 세트장이 조성된 곳은 순천이 유일하다고 한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허삼관 영화를 촬영한 장소 마루 위 상에 놓인 찌그러진 주전자들.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허삼관 영화를 촬영한 장소 마루 위 상에 놓인 찌그러진 주전자들. ⓒ천지일보 2018.7.31

▲ 60년대 읍내 거리 세트장
이곳에는 순천 시내를 흐르는 옥천을 재현한 곳이 있다. 시대극에 따라 청계천이 되었다가 압록강이 되기도 한다. 옥천 주변을 돌아보는데 갑자기 분수가 솟아오른다. 시원한 물바람을 맞으니 옛날 어르신들이 개울에서 멱을 감던 모습과 빨래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곳을 지나면 ‘허삼관 매혈기’를 촬영한 허삼관의 집이 나온다. 

마루에는 노란 주전자와 냄비, 양동이가 동그란 상 위에 올라 있어 금방이라도 허삼관이 달려와 막걸리라도 한잔 할 것만 같다.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작품으로 하정우 배우가 감독을 맡아 우리나라에 맞춰 만든 영화다. 6개월 동안 스탭들과 이곳에 머물며 촬영했다. 매혈기는 피를 팔면서 삶을 살아가는 데 중국에선 건강한 사람만이 피를 팔아 피를 못 팔면 장가를 못 간단다. 서민의 삶을 그린 영화지만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허삼관 집을 나와 읍내에 들어서면 시계방, 우리나라 최초의 외래어를 쓴 ‘썬’ 담배가 있는 담뱃가게 등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간판이 늘어서 있다. 극에 따라 간판도 수시로 바뀐다고 한다.
 
순천의 대표적인 장터(웃장, 아랫장, 중앙시장)인 아랫장을 재현한 시장에는 직접 음식을 팔고 있다. 장터의 큰 밥그릇을 보니 고봉(수북하게 담는 방법)으로 밥을 주던 시절이 떠오른다. 시장을 돌아 다리 하나를 건너면 80년대 충무로 영화의 거리에 접어든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24일 전남 순천시 조례동의 순천 드라마촬영장을 방문한 아버지와 딸이 교복을 입고 옛날 학창시절 얘기를 딸에게 해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지난 24일 전남 순천시 조례동의 순천 드라마촬영장을 방문한 아버지와 딸이 교복을 입고 옛날 학창시절 얘기를 딸에게 해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8.7.31

▲ 80년대 서울 충무로 거리 세트장
이곳에서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이 있다. 바로 교복체험장이다. 예전에는 관광하면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났으나 지금의 관광은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체험도 하고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일까. 봉화고 3학년 2반 교실인 이곳 교복체험장에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 교복을 입고 책상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누고 아들이 선생님이 되고 어머니가 학생이 되는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체험 비용은 50분에 2500원. 2500원의 행복이다. 교훈과 교육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추억과 그리움을 선물 받는 비용치고는 꽤 저렴하다. 교복을 입고 80년대 부모님들이 청춘을 불살랐던 충무로의 추억의 음악 고고장, 순양극장을 지나 60년대 읍내 거리, 달동네를 찾아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도 좋겠다. 순양극장은 ‘빛과 그림자’의 주인공인 안재욱이 뺏겼던 극장을 되찾는 장소로 등장한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관광객들이 청춘사긴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관광객들이 청춘사긴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8.7.31

▲ 70년대 서울 봉천동 달동네 세트장
서울 봉천동 달동네를 올라가는 길목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이곳은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연정훈이 힘들 때 고개 숙인 장면이 연출된 곳이다. 달동네를 올라가는 길에 칡과 등나무가 함께 있는 그늘이 있다.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는 성질이 있어 둘이 만나면 잘 풀리지 않는단다. 그래서 생긴 말이 ‘갈등’이라고 한다. 더위에 올라갈까 말까 갈등을 해결하고 올라가 본다. 

달동네 판자촌은 70채 정도 된다. 시원한 바람에 달동네를 마주 보니 그림 같다. 실제 화가들도 이곳에서 달동네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달동네 70채가 사용하는 공동화장실은 하나다. 옛날에는 공동화장실 하나, 우물 하나여서 줄을 서는 건 당연지사였다. 누나가 동생들을 위해 공장에 다니며 공부시켰던 시절,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이곳은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지만, 젊은이들에겐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달동네 구석구석 골목을 돌아 올라가면 꼭대기에 교회가 있다. 이곳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어 종종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판자촌 집 안에는 ‘사랑과 야망’의 주인공 집도 있다. 옛날 TV, 연탄 창고, 쌀 창고 등이 그대로다.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70년대 달동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얼마 전에 들어선 언약의 집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천지일보 2018.7.31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70년대 달동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얼마 전에 들어선 언약의 집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천지일보 2018.7.31

달동네를 내려오는 내리막길은 ‘복희누나’에서 강원도 길, 전주 길로 나온 곳이기도 하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얼마 전에 들어선 언약의 집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나무판에 서로의 약속을 적고 맹세하는 곳이다. 언약의 집 밖에는 장미 울타리가 쳐진 벤치가 있어 포토존으로 안성맞춤이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 계단을 내려서면 다시 60~80년대 길로 갈 수 있다. 70년대 달동네를 먼저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가 60, 80년대 거리를 둘러보는 것도 묘미겠다. 각종 새소리, 매미 소리, 밟을 때마다 들리는 자갈 소리가 어울려 이곳을 벗어나면 꿈에서 깰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멀리 달동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이들이 마치 드라마 주인공처럼 보인다. 등용문이라 불리는 문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입시 합격이라는 소문이 있어 드문드문 기도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추억 속, 그때 그 시절 속으로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이곳 순천 드라마촬영장 방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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