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측 기관인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내부 역사관에 전시된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한 제27회 총회록. ⓒ천지일보
장로교 측 기관인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내부 역사관에 전시된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한 제27회 총회록. ⓒ천지일보

 

 

 

우상숭배 거부 순교자 재조명

과거 신앙변절 회개촉구 운동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신사참배 80주년을 기억하며 한국교회가 회개 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이번엔 감리교에서 회개 목소리가 나왔다.

30일 기독교대한감리교 중부연회는 지난 3일 철원과 동해에서 동부연회의 도움으로 신사참배거부 순교자 흉상부조 제막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감리교에서 일제 천황신에게 절하지 않은 최초 순교자는 강종근(1901~1942) 목사와 최인규(1881~1942) 권사다. 중부연회는 지난 4월 2일에도 ‘신사참배 80년, 우상숭배 회개: 선교한국’을 주제로 우상숭배의 한국 교회사를 회개하고 새로운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또 강 목사와 최 권사의 흉상부조 전달식을 진행했다.

감리교에서 ‘신사참배 80년 우상숭배 회개운동’은 윤보환 감독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20년 전 싱가폴 선교사 성역 기도 중 ‘1938910’이라는 숫자를 환상으로 보고 1938ᅟᅧᆫㄴ 9월 10일이 개신교회가 일제히 천황신에게 머리 숙은 신사참배 우상숭배 발표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간증했다. 이후 윤 감독은 ‘신사참배=우상숭배’라는 점을 주창하고 회개를 촉구해왔다.

강종근 목사는 1939년 목사안수 받은 후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도 애국과 신사참배에 항거하는 설교를 지속했다. 결국 194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사상범 예비검속령’에 걸려 신사참배 거부 항쟁자 193명과 함께 검거됐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1942년 6월 3일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그는 목숨을 잃으면서도 “나를 취조한 일본 경찰을 절대로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오”라며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다 키워주신다고 약속 하셨소” 등을 당부했다.

200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으며, 2006년 11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최인규 권사는 40세에 예수를 영접하고 1935년 9월 17일 구역회에서 전 재산(밭 1,369평, 논 539평)을 교회에 봉헌했다. 1940년 5월 신사참배, 동방요배,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 등을 거부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41년 11월 21일 함흥지방법원 함흥재판소에서 불경죄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대전형무소로 이감됐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2년 12월 16일 고문 후유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감리교 외에도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한기부, 윤보환 대표회장)가 이달 13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서울강남호텔에서 신사참배 결의 80주년 우상숭배 회개운동을 목적으로 각 교단 및 주요단체장 연석회의를 열었다.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주제로 열린 연석회의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각 교단‧기관 목사 및 대표 6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올해 9·10월 진행되는 각 교단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 무효 선언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또 10월에는 천만인 신사참배 회개운동 연합집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신사참배 회개운동은 각 교단과 총회의 연합 하에 전개된다. 총회와 연회, 지방회와 노회에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회개 선언을 하고 각 교단 행사 시 행사 타이틀 앞에 ‘신사참배 회개’라는 기도제목을 붙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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