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5년 9월 23일 미국 워싱턴 성마태오 사도대성당에서 시어도어 매캐릭 추기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CRUX)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5년 9월 23일 미국 워싱턴 성마태오 사도대성당에서 시어도어 매캐릭 추기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CRUX)

성인 신학도 사제들 성추행
모든 공적 직무정지 조사 중
성범죄 ‘무관용 원칙’ 재확인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미국 가톨릭계의 거물 시어도어 매캐릭 추기경(88)이 낸 사직서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락했다. 50년 전 성추행 의혹이 속속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자 매캐릭 추기경이 스스로 사직한 것이다. 성추행 파문으로 추기경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다.

교황청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매캐릭 추기경이 전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교황이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교황은 가톨릭 교회재판에서 성추문 의혹이 조사될 때까지 기도와 속죄 속에서 생활할 것을 매캐릭 추기경에게 지시했다.

앞서 교황청은 지난 6월 미국 사회에서 신망이 높던 매캐릭 추기경이 미성년자들과 성인 신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에 휘말리자 ‘모든 공적 직무를 맡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번 매캐릭 추기경 성추행 논란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면서 파문이 점차 커지고 있다. 2001∼2006년 미국 수도인 워싱턴DC 대주교를 지낸 매캐릭 추기경은 종교계를 넘어 미국 사회 전체에서 폭넓게 존경받아온 인사로 명성이 높다. 지난 2008년 워싱턴포스트가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인사’ 중 한 명이다. 한마디로 한국 가톨릭계를 이끌고 대표하는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추기경이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바로 매캐릭 추기경이다.

미국 사회에서 미투운동에 나선 여성들의 폭로가 계속 이어지면서 매캐릭 추기경의 의혹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뉴욕타임스(NYT)는 매캐릭 추기경의 성추문 의혹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NYT는 “매캐릭 추기경이 지난 1984년부터 2008년까지 수많은 신학도를 성추행하고, 이 중 2명과는 돈을 주고 합의한 사실이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는 장기여행 등을 할 때도 마음에 드는 신학도들을 동반해 같은 방을 쓰면서 마사지를 요구하는 등 성추행을 일삼아 왔다”고 폭로해 충격을 줬다. 앞서서도 매캐릭 추기경은 50여년 전 16세 소년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결국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특별조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사건과 달리 성인 신학도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추행 피해자임을 고백한 로버트 키올렉씨는 “일반 사회나 회사 등에선 다양한 시스템으로 성추행을 고발하거나 피해를 신고할 수 있지만 가톨릭교회엔 그런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매캐릭 추기경에 대한 고발을 무시한 미국 가톨릭교회 수뇌부를 강하게 질타한 것이다. 그는 “추기경을 믿었고 신뢰했고 추종했던 대가를 치르게 됐다”고 지적했다.

NYT 칼럼니스트 로스 도우댓은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미국 주교들이 매캐릭의 혐의들을 누가 알았지만, (왜) 보고하지 않았는지를 철저히 파악할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2013년 취임 후 “사제들의 성범죄는 끔찍한 신성 모독”이라고 비판하며 ‘성범죄 무관용 정책’을 펼쳐왔다. 교황의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한 매캐릭 추기경 성추행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가톨릭 교회법원이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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