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노회찬 의원의 죽음
[이재준 문화칼럼] 노회찬 의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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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행위다. 필자는 이런 이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자신의 목숨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죽음은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지방 도시까지 노회찬의 빈소가 마련돼 애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진 자보다는 없는 자, 권력자 보다는 억압을 당하는 자 편에 서 온 노회찬. 진보 진영의 많은 지지자들이 빈소를 찾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회의와 의문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보수, 진보의 갈등은 이번 노회찬 자살 앞에서도 양분되고 있는 인상이다. 정말 도덕적 상처에 대한 자책으로 자살한 것일까. 일각에서는 부검 등 철저한 사인 규명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그의 자살이 믿기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과거 검찰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은 공소권 없음을 통해 덮이고 역사에 묻혀왔다. 부정과 비리가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여러 정치인들의 비리수사가 도중에 이렇게 끝났다. 

자신이 목숨을 버리면 가족이 편해지고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어떻게 보면 이런 법적 면죄부가 아까운 생명을 잃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거 같다. 설령 피의자가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해도 그 죄목에 관한 재판을 계속하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극단의 길을 선택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범죄자에 면죄부를 주는 것 자체가 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비리와 관련한 정치인의 자살은 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끊는 자결과는 다르다. 일제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 선생이나 대마도에서 단식으로 죽은 면암 최익현 선생, 청주에서 일본관헌에 저항하다 굶어 죽은 소당 김제환 선생의 애국적 의지가 아니다. 이들 우국지사의 죽음은 절사(節死)로 평가받는다. 

본인이 죽음으로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가족들이다. 평생을 같이해온 아내와 형제들이 입는 상처는 어떠한가. 또한 생존한 노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게다. 남은 가족들이 눈물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가.

조선시대 나이 젊은 부인들이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목을 매는 경우가 많았다. 주위에서는 자결을 미화하고 열녀라고 정려를 내려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러나 남은 자식들은 졸지에 고아가 되어 이집 저집 맡겨졌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이를 비판한다. 목숨을 끊는 일이야말로 가장 흉측하다고 했다. 또 무책임한 일이며 칭송받을 일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남은 자식을 잘 키우고 노모를 봉양하는 것이 진정한 열녀라고 지적했다. 

자신만이 비난과 고통에서 해방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비겁한 행동이다. 공인정신의 실종이며 믿고 따라 준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배신행위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삐걱거리는 북핵 소용돌이 속에 미·중 간의 무역 관세전쟁으로 인해 경제문제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잇단 도산과 근로자의 시급인상으로 인한 고용불안, 영세 상인의 저항이 화급한 문제다. 

없는 자에게 보다 더 혜택을 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서정이 진통을 겪고 있다. 피드백을 생각지 않고 개혁부터 하겠다는 성급함이 빚은 결과다. 이럴 때 국민이 뽑아 준 국회의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정말 목숨을 버릴 만큼 용기가 있다면 더욱 용기 있는 행동으로 국민을 위한 일에 열정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잘못이 있으면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죄하고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도 한편으론 씁쓰레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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