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삶] 가을 절기 : 입추에서 상강까지
[생명과 삶] 가을 절기 : 입추에서 상강까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삼복더위에 전국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여름의 마지막 절기인 대서(大暑; 7월 23일)에 경북 영천의 낮 최고 기온이 38.2를 기록했으며, 24일에는 대표 관측 지점에서 측정한 경북 의성의 기온(공식)이 39.6도로 가장 높았다. 기상청의 중기예보에 따르면 8월 2일까지 가마솥더위를 식힐 수 있는 비 소식이 없고 북태평양고기압이 맹위를 떨치며,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지역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삼복더위에서 삼복(三伏)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初伏)은 하지로부터 셋째 경일(庚日, 7월 17일), 중복(中伏)은 넷째 경일(7월 27일) 그리고 말복(末伏)은 입추 후 첫째 경일(8월 16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년에 비해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가을의 문턱인 입추(立秋)가 8월 7일로 다가오고 있다. 

“봄은 사람의 기분을 방탕에 흐르게 하고, 여름은 사람의 활동을 게으르게 하며, 겨울은 사람의 마음을 음침하게 하건마는, 가을은 사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한다”는 소설가 정비석의 수필 ‘들국화’에 담긴 4계절의 속성에서 보는 것처럼 가을은 날씨가 쾌청해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계절이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로 지칭되는 가을의 첫 절기 입추에 접어들면 밤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 무렵은 농촌이 조금 한가해지는 철이라 바쁜 일에서 벗어나 어정대며 지낸다는 ‘어정 7월’ 그리고 시원한 곳과 그늘을 찾아 건들거리며 지낸다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바쁜 농사일에서 조금 한가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는 경구로 받아들여진다. 입추는 겨울 준비로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에 대비하는 철이기도 하며,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입추에 이어지는 처서(處暑; 8월 23일)는 더위가 머물러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한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지며 풀이 더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베어내는 절기이다. 날씨가 선선해져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처서 다음 절기인 백로(白露; 9월 7일)는 ‘하얀(白) 이슬(露)’을 뜻하는 말로, 밤 기온이 낮아지며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절기를 의미한다. 예전 농촌에서는 이 무렵 바쁘고 고된 여름 농사를 마치고 추수 때까지 쉴 수 있어, 아낙네들이 부모님을 뵈러 친정을 방문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제주도 속담으로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란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백로 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을의 가운데 절기인 추분(秋分; 9월 23일)은 낮이 가장 긴 하지 이후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이 절기는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와 고추를 따서 말리는 등 가을걷이로 바쁜 시기이다.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우렛소리’는 동물의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로 추분이 지나면 벌레들이 월동할 곳으로 숨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운 것은 추분까지이고, 추운 것은 춘분까지라는 말도 있다. 

추분 다음 절기는 ‘차가운(寒) 이슬(露)’의 의미를 담은 한로(寒露)로,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농촌이 무척 바쁜 시기이다. 이 절기에는 단풍이 물든 가을 풍경을 즐기며 국화잎을 따서 국화전과 국화 술을 만들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으로 간다’ ‘가을 곡식은 찬 이슬에 영근다’라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는 상강(霜降; 10월 23일)으로 태양의 황경이 210도가 되는 시기이다. 이 무렵 쾌청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지만 밤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 이슬이 서리로 변해 ‘서리(霜)가 내리기(降)’ 시작하는 절기로 부르고 있다. ‘한로 상강에 겉보리 파종한다’라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늦어도 상강 전에 보리 파종을 마쳐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상강이 지나 입동 전에 벌레들은 겨울잠에 들어가는 월동 준비를 한다.   

한자로 표기하는 절기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져 있지만,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절기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흘러간다. 입추로 열려 상강으로 마감하는 결실의 계절 가을 절기에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 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