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지난 주말 산에 올랐다. 집 근처의 청계산 국사봉을 오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치른 뒤의 폐허 같았다. 산길에 죽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이 꺾여 넘어져 등산객들의 통행을 가로막아 큰 불편을 주었다.

꼿꼿한 기상의 상징인 소나무들의 피해가 특히 컸다. 산 능선 부근의 피해가 아주 심해 나무들이 밑둥부터 뿌리채 뽑혀 넘어졌으며 줄기와 큰 나뭇가지도 부러졌고 나뭇잎들이 길가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태풍 ‘곤파스’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크고 깊었다. 산은 말 없이 그대로인데 자연의 무서운 변화를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여성 등반가 오은선을 상대로 “올랐다” “못 올랐다”며 등정여부가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국내 산악계를 보면서 누가 뭐래도 산은 늘 한결같다는 것을 생각했다.

진실은 산에 있을 텐테 속세의 때묻은 인간들이 서로 치고 받으며 진흙땅 싸움을 하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한 뒷맛을 준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마치 속도전이라도 치르듯 경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애당초 무리가 아니었는가. 산등정을 마치 스포츠 기록경기를 하듯 했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신비스러운 히말라야 고봉조차도 이미 인간들을 위한 경기장이 돼버렸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 정상 200m를 앞두고 실종됐다 무려 75년 후 얼어붙은 시신이 발견된 ‘실패한 영웅’ 조지 맬러리의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말은 이제 전설상의 어록이 된 지 오래다. 금메달을 놓고 국가별 경쟁이 벌어지는 올림픽 무대같은 격전장이 됐다.

누가 먼저 오르느냐, 누가 더 많이 고봉을 점령하느냐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히말라야 고봉등정을 개인의 명예를 빛내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 후원사들의 지원을 받아 무리한 도전과 경쟁을 하는 게 세계등반계의 요즘 분위기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이런 일탈한 모습이 눈꼴사납게 많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엄홍길, 박영석의 14좌 완등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는가 하면 지난 4월에는 오은선이 세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쟁취했다며 TV에서 생중계를 하는 등 국내매스컴에서 부산을 떨었다. 기념할 만한 히말라야 고봉등정에 성공하면 국내 매스컴들은 마치 엄청난 일을 해낸 듯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이렇게 운동선수들처럼 등반가들이 경쟁을 벌인 것은 대한산악연맹과 결코 무관치 않다. 대한산악연맹은 지난 1999년 엘리트 체육를 취급하는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로 등록하면서 등산이 바야흐로 스포츠로 공인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예전 체력과 건강증진을 우선시하던 등산이 스포츠로 정식 승인받으면서 승리를 앞세우는 가치와 이념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됐다.

그러나 거북이처럼 끈기를 갖고 오르는 등산은 시간을 측정하고 점수로 수량화하는 조직화된 일반 경쟁 스포츠와는 다르다. 그래서 최초, 최고라는 타이틀이 생겼고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진기록 등을 만들어 경쟁적인 분위기를 유도했다.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은 1986년 라인홀드 매스너(이탈리아)가 처음 달성했는데 그 이후 20여 명이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오은선은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서 지난 4월 처음으로 14좌 완등기록을 세웠다고 해서 국내외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오은선의 14좌 완등과 관련, 모 방송사의 등정의혹 고발프로그램 방영에 이어 대한산악연맹은 엄홍길, 박영석 등 칸첸중가 등정자 6명의 확인을 거쳐 지금까지 공개한 그의 칸첸중가 등정 자료를 심도있게 검토한 결과 정상등정이라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고 히말라야 등반자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축적하는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는 “오 씨가 등정하지 않았다고 입증될 때까지 등정은 성공한 것으로 여기겠다”며 애매한 답변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현재 등정의혹을 가리기가 쉽지않다.

그러나 오은선의 등정시비를 지켜보면서 찜찜한 생각이 드는 것은 결코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산을 갖고 인간들이 재주를 피우고 논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고의 등반기술은 살아남는 것이다”는 라인홀트 매스너의 말처럼 히말라야는 등정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등정을 마치 스포츠 기록경쟁하듯 승부를 벌이고 권위를 세우는 것은 인간들의 편의주의 발상이다. 좀더 겸허하고 속탈하는 자세와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산에 올랐으면 한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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