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이동원 대법관 후보의 인사 청문회를 보았다. 의원도 예의를 갖추고 이 후보자도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예의 갖추는 거야 나무랄 건 없지만 논점도 정확히 제기하지 못하고 후보자도 답변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게 문제다. 이 후보자는 17년 전에 2억 3천만원 아파트를 6000만원으로 다운계약하기도 했고 통합진보당 재판 관련 문제도 있는데 제대로 따지는 의원도 없었다. 부실 검증의 전형이다. 

의원들이 질문하던 중 박지원 의원이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폐지 쪽이냐 개정 쪽이냐 물었더니 둘 다 아니란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은 문제가 없는데 ‘안이한 적용’이 문제란다. 엄정하게 적용하면 된다고도 했다. 법의 반인권성은 애써 외면하면서 ‘안이한 적용’이 문제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말한 ‘안이한 적용’은 무엇을 의미할까. 법이 문제가 없는데 ‘안이하게’ 적용할 수 있을까. ‘안이한 적용’이 문제라는 말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이미 문제를 안고 있는 법이라는 걸 인정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법률은 ‘안이한 적용’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관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보기에도 국가보안법은 ‘안이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대법관 후보자라면 이 대목에서 국가보안법이 문제없다고 강조할 게 아니라 왜 이 법이 ‘안이하게 적용’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 질의를 하는 의원이 국가보안법 어떤 조항이 문제가 있느냐고 고쳐서 묻자 찬양고무죄가 문제라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부분을 삭제하거나 고쳐야 맞다. 문제가 있는 법 조항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안이한 적용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스스로의 말 속에서 일관성이 없음을 드러내었다. 

대법관 후보가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건 자유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시대착오적인 법률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있어 왔고 지난해에도 죄 없는 서점주인 이진영씨를 ‘이적표현물을 소지, 게시, 전송, 판매한 공안사범’이라는 이유로 구속해 가정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서점주인과 가족들의 건강을 해쳤다. ‘이적표현물’ 가운데는 교육의 선구자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도 포함됐다. 1, 2심에서 무죄가 났지만 이미 온몸에 고통의 상처를 남긴 뒤였다. 눈앞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보고도 국가보안법은 문제가 없고 ‘안이한 적용’이 문제라고 말하는 건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는 걸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인권 법률을 애써 외면하는 행동이다. 

국가보안법은 유엔 인권위에서도 미국 국무부에서도 국제앰네스티에서도 여러 차례 개폐를 요구할 정도로 명성을 떨친 악명 높은 법률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사상 및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보장이다. 국가보안법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만 믿고 다른 사상을 믿거나 신봉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사상을 추구하는 조직이나 집단에게는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봉쇄할 수 있는 법률인데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 대법관이 되면 한국 민주주의에 암운을 드리우는 일이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자가 대법관 청문회에 나온 건 제청권자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시대적 소명의식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로 본다. 

지금 남북화해와 동북아평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반국가단체와 종전선언을 해야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 없이는 통일국가도 인권국가도 불가능하다. 

아직 남북화해가 제도화된 건 아니긴 하지만 남북화해, 북미화해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남북화해의 길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남북화해와 국가보안법은 공존이 불가능한 법인데 김 후보자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국가보안법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법률인데 일부 판사가 안이하게 적용하고 있어 문제라는 그의 문제의식이 그래서 놀랍다. 대법관에 부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