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건설노동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노동자 76% “정부대책 몰라”

“폭염대책 실질적 관리 필요”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덥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먹고 살려면 해야죠 뭐 어쩌겠어요….”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기록하며 흡사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날씨를 보인 25일 오후 1시. 서울 중구의 한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만난 현진섭(가명, 53, 남, 대구광역시)씨는 이마에 주룩주룩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이같이 답했다. 현씨를 비롯한 건설 근로자들은 팔 토시와 마스크, 긴 바지로 무장한 채 뜨거운 햇빛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용산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황현성(33, 남)씨는 “아침 7시부터 나왔는데 점심먹으며 30분 쉰 게 전부”라며 “20년 동안 하던 일이라 괜찮은데 날이 더우면 아무래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을 하지만 건설현장 대부분이 화장실이나 샤워시설도 없어서 심지어 땀에 젖은 작업복 그대로 입고 집에 갈 때가 많다”며 “대규모 건설현장은 모르겠는데 중·소규모 건설현장 같은 경우 작업환경이 너무 열악해 힘들 때가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35도가 넘어가는 폭염과 관련해 현재 서울시는 낮 12시부터 오후 2시, 고용노동부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긴급작업을 제외한 나머지 작업을 중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고용부는 또 폭염주의보(33도 이상)에도 1시간 일하면 10~15분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건설현장에서는 폭염과 관련된 정부의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4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이 목수·철근·해체·타설 등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2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전체의 8.5%(18명)에 그쳤다.

응답자의 73.7%(157명)는 햇볕이 차단된 휴식 공간이 아닌 ‘아무데서나 쉰다’고 응답했다. 그늘지거나 햇볕이 완전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26.3%(56명)에 그쳤고 시원한 물조차 주지 않는다는 응답은 29.6%(64명)였다.

또 전체 응답자의 76.1%는 폭염에 대한 정부대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폭염경보 발령으로 오후 2~5시 작업이 중단된 경우는 14.5%(31명)에 그쳤다.

특히 고용부의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작년까지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자는 35명이고 이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재해비율은 건설업이 65.7%(23명)로 가장 높았고, 사망자는 모두 건설업 종사자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17일에는 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 신축현장에서는 34도의 폭염 속에 거푸집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박모(66, 남)씨가 떨어져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오전 현장 팀장이 건설현장 측에 무더위로 인해 작업시간 조정을 요청했으나 현장 측은 공정상 바쁘다는 이유로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건설노조는 24일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폭염대책을 이행하지 않는 건설현장의 처벌과 폭염대책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정부에 요구했다. 

건설노조는 “폭염대책 마련은 건설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라며 “실질적인 관리감독으로 건설노동자가 진짜 쉴 때 쉬고, 제대로 된 곳에서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공사비가 깎이는 다단계 하도급부터 없애야 한다”며 “적정 공사비 책정과 적정한 입찰제도도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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