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징키스칸의 복권’.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의 ‘징키스칸의 복권’.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국제협력전 ‘다툼소리아’ 열어

기술 매체에 따라 급변하는 예술의 변화 주목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칭기스칸이 등장했다. 그런데 모습이 조금 특이하다. 말 대신 자전거를 타고 있으며, 잠수 헬멧으로 무장한 투구와 철제 주유기로 된 몸체, 플라스틱 관으로 된 팔이 있는 이색적인 모습이다. 자전거 뒤에는 텔레비전 함을 가득 싣고, 네온으로 만든 기호와 문자들이 텔레비전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는 백남준의 ‘징키스칸의 복권(217X110X211㎝)’이다. 작품은 베니스비엔날레를 위해 제작된 로봇으로 실크로드가 저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것을 형상화했다. 백남준은 교통, 이동수단을 통해 권력을 쟁취·지배했던 과거에서 거리·공간의 개념이 없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새로운 미래가 올 것을 예견했다.

1974년 백남준은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플래닝’이라는 글을 통해 인터넷 등 광대역통신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후 45년이 지난 오늘날 미디어 아트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백남준아트센터가 개최한 국제협력전 ‘다툼소리아’전은 디지털시대의 데이터 환경이 우리 삶에 어떻게 융합되며, 인간의 감각들을 변화·확장하는지를 보여준다. ‘다툼소리아’는 다툼과 관련된 소리를 지닌 게 아니라, 정보를 뜻하는 ‘데이텀(datum)’과 감각을 뜻하는 ‘센서리아(sensoria)’의 조합어다. 이는 21세기 정보시대에 현실과 가상 사이에 새로운 인지의 공간이 창출되고 있음을 뜻한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가 국제협력전 ‘다툼소리아’와 세 개의 방 프로젝트전 ‘현재의 가장자리’를 동시에 개최한다. 개막식이 열리기 전인 12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두 전시의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사진은 기자들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8.7.12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가 국제협력전 ‘다툼소리아’와 세 개의 방 프로젝트전 ‘현재의 가장자리’를 동시에 개최한다. 개막식이 열리기 전인 12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두 전시의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사진은 기자들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8.7.12

 

전시에 참여한 백남준, 중국의 류 샤오동, 독일의 카스텐 니콜라이 작가는 공통적으로 실재, 새로운 매체, 그리고 환경에 의해 변하는 인간의 감각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벌여왔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세 작가는 서로 다른 전문 분야에서, 각각의 시각으로 매체와 인간의 지각 변화를 포착한다.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실험적·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봤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지식, 정보 등이 우리 두뇌처럼 혼합돼 미래의 주체이자 윤활제 기능을 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징기스칸의 복권’ 등 작품을 통해 보이듯 그는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으로 데이터 전송을 하는 새로운 미래가 올 것으로 예견했다.

류 샤오동은 현대 중국의 삶을 대형 화폭에 옮기는 사실주의 화가다. 그의 작품은 인구 이동, 환경 위기, 경제적 격변 등과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담아내면서 인공과 현실 사이에 미묘한 중립을 유지한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불면증의 무게(2018)’는 기술자들과 개발한 스트리밍 데이터와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제작된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용인의 풍경과 전남도청이 보이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시간으로 풍경을 촬영해 그 데이터가 전시장으로 전송하도록 했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가 국제협력전 ‘다툼소리아’와 세 개의 방 프로젝트전 ‘현재의 가장자리’를 동시에 개최한다. 사진은 카스텐 니콜라이 작가의 '유니테이프(2015)'. ⓒ천지일보 2018.7.12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가 국제협력전 ‘다툼소리아’와 세 개의 방 프로젝트전 ‘현재의 가장자리’를 동시에 개최한다. 사진은 카스텐 니콜라이 작가의 '유니테이프(2015)'. ⓒ천지일보 2018.7.12

 

로봇은 전송된 이미지를 건축용 비계 위 2개의 대형 캔버스에 옮긴다. 도시가 잠들지 않으며 변화하듯 작품은 기계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카메라로 보이는 풍경을 그려낸다. 이는 달라진 기술 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실재와 변화된 우리의 지각 체계를 암시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류 샤오동은 “화가는 눈을 통해 보고 그림을 그리고, 로봇은 렌즈를 통해 보고 작품을 만든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둘 다 객관적인 사실을 그린다”며 “저는 그림을 그릴 때 항상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계는 저보다 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생각이 들어 이번 작업에서는 기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음악, 미술, 과학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음악가인 카스텐 니콜라이는 소리와 빛의 주파수 등 과학적 현상을 눈과 귀로 인식하게 해 인간의 감각적 인식이 분리되는 현상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전시 출품작 ‘유니테이프(2015)’는 초기 컴퓨터 시대의 천공카드를 암시하는 시각적 구조와 인식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리드나 코드와 같은 수학적 패턴 이미지가 주파수 소리와 함께 시시각각 움직인다. 소리가 완전한 감각적 몰입을 만들어내기 위해 울려 퍼지는 동안 데이터가 무한한 깊이와 넓이로 확장되며 양 옆에 배치된 거울을 통해 고조된다.

‘다툼소리아’전과 함께 한국, 중국, 독일의 신진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세 개의 방 프로젝트 ‘현재의 가장자리’도 열리고 있다. 신진 미디어 작가들은 기술 매체에 의해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저마다의 관점을 제시한다. 전시는 모두 오는 9월 16일까지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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